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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의 귀환, <랜드 앤 프리덤>
2002-07-24

무척이나 잔인한 여름이다. 광장과 거리로 뛰어나온 월드컵의 붉은 열기를 한 발자국 뒤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허탈감에 널브러진 자신을 발견하고 나서는 더욱더 여름이 잔인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세대의 문화 표현 방식이 만들어졌다는 발빠른 ‘문화평론가’의 언급에 쉽게 동의할 수도 없다. 과거의 경험과 현실을 견주어 다소 무기력해진 자신을 다시 세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1996년 봄. 그 시기는 ‘연극과 사진’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해 연극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몰두하던 시기다. 내가 주로 활동하던 공간은 대학로에 있었다. 희곡과 함께 연극을 기록한 몇권의 사진책이 출간되면서 연극계에서 지명도 있는 배우나 연출가 등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을 때다. 연극 <북어대가리>의 사진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희곡 작가 이강백 선생을, 다른 다큐멘터리 작가와 함께 대학로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한 작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논의는 예상보다 길지 않았고, 조금은 애매해진 시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눈길을 주고받다가 함께 영화나 한편 보자고 나섰다. 예술영화만을 상영하던, 당시로서는 귀한 공간이었던 동숭씨네마텍에서 마침 <랜드 앤 프리덤>이 상영되고 있었다. 일년에 3∼4편 정도만의 영화관 나들이를 하던 나에게 이 영화와 감독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있었을 리 만무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는 “이 정도면…” 하는 동의를 서로가 했던 것 같다. 제법 편안했던 상영관의 좌석은 썰렁했다. 10명 정도나 되었을까. 세명의 남자 ‘단체 관람단’은 편안하게 좋은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파시스트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유럽의 지식인과 노동자들은 빨치산이 되어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다. 1937년의 스페인을 무대로 한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민족전선연합에 참여한 데이빗의 일기를 통해 현장을 재구성해낸다. 유럽이 파시스트의 세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선에 참여한 ‘인터내셔널’의 전사들. 그 전선은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직업배우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이 연기하는 현장이 그렇게도 친근하게 머나먼 역사의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고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데이빗이 참여하고 바라본 스페인 내전의 와중인 농촌의 한 전장은 광주민중항쟁의 현장을 겹치게 만들고 있었다. 바로 농민들이 지주의 땅을 접수한 뒤 이 토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토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농민들은 당장 토지를 공유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농민은 지주들의 땅은 공유화하고 작은 땅을 소유한 농민의 땅은 인정하는 현실론을 제기한다. 이 격렬한 토론의 현장은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이 전쟁에서 이들은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이 장면을 보면서 광주민중항쟁의 마지막밤. 무기를 계엄군에 ‘자진’ 반납하고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격렬한 토론을 전개했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의 현장이 광주민중항쟁의 현장으로 또렷하게 눈앞에서 영화처럼 전개되고 있었다. 다시 <랜드 앤 프리덤>으로 돌아왔다. 영화의 마지막. 데이빗은 이렇게 일기에 썼다. ‘나는 나의 신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패배는 일시적인 것이다.’

켄 로치는 영화에서 데이빗의 손자 킴을 통해 패배의 비극을 말하기보다는 새로운 새대의 희망을 읽게 한다. 하지만 영화를 함께 본 세명의 단체 관람단은 영화가 끝나고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가에 고여 있는 눈물을 읽었다. 그 패배가 광주의 패배로 완전히 치환되어 있었다. 그 감동의 뭉클함은 영화 <랜드 앤 프리덤>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삶을 규정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영화의 장면들은 선명한 체험처럼 남아 있다. 여전히 광주와 겹쳐지면서.

그 과거에서 오늘로 돌아왔다. 영화나 한편 보려고 극장을 기웃거려 보면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형 할리우드 영화에 점령되어버린 요즘의 스크린 현실이 당혹스럽다. 굳이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를 노골적으로 기피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선택의 자유를 탈취당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면 분노다. 다양성을 파괴하고 획일성을 강요하고 있는 거대 영화자본의 지배력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개인적 즐거움에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지금 이 순간에 역사적 감동이 그리워지는 것은 단순한 연민일까, 아니면 향수일까. 강요되는 선택이 선사한 웃음으로 사라지고 마는 즐거움이 아니라 잔잔한 감흥의 뭉쿨함을 간직하게 하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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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해룡/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