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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귀레,신의 분노
2002-07-30

■ Story

1560년, 스페인 군대는 전설의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아나선다. 장군 피사로(알레한드로 레풀레스)는 정글에 가로막혀 움직일 수 없게되자 선발대를 뽑는다. 대장으로 임명된 우르수아(뤼 게라)는 부대장 아귀레(클라우스 킨스키) 등 40여명의 병사와 노예를 이끌고 아마존을 헤맨다. 우르수아는 원주민들의 공격과 거센 물살 등으로 더이상의 탐험은 무리라고 판단, 선발대의 발길을 돌릴 것을 명하지만 아귀레는 그에게 저항한다. 아귀레는 우르수아를 감금하고 국왕에 대한 반역을 꾀한다. 다른 이를 우르수아의 자리에 앉힌 뒤 아귀레는 탐험을 강행한다. 병사들은 하나둘씩 굶주림과 질병으로 쓰러지고 아귀레는 차츰 광기어린 면모를 보인다.

■ Review

<아귀레, 신의 분노>는 한때 국내 영화광들에게 ‘컬트’ 대접을 받았다. 80년대 이후 대학가에 생긴 작은 상영공간들에서 헤어초크 감독의 영화는 인기상영작 목록에 오르곤 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피츠카랄도>의 거대한 배를 산으로 끌고 올라가는 사나이,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독선적인 주인공. 어두운 시절을 통과했던 당시 청춘에게 이 영화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곤 했다. 그건 헤어초크의 영화를 편파적으로 해석한 것이었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문명과 역사에 관한 헤어초크 감독의 경멸이, 그리고 어둠의 힘에 관한 묘사가 어느 감독작보다 극에 달한 영화다.

“우리에겐 새 지도자가 필요해.” 아마존 일대를 헤매는 일행은 곧 위기를 맞는다. 갈 길은 멀고 내분은 극심해진다. 여기 한 사람이 나선다. 그는 황금의 꿈으로 부하를 독려하고 주먹과 칼을 휘두르며 일행을 재촉한다. 아귀레라는 인물이다. 아귀레에겐 딸이 하나 있다. 딸 역시 아버지와 동행하는데 그녀는 말이 없다. 언제나 인형처럼 다소곳하다. 탐험대가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한 뒤 여정은 수월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화살,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 불확실한 목적지가 그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람들은 제정신을 잃고 환각상태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아귀레 역의 클라우스 킨스키는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친다. 그는 영화에서 “신의 분노”라고 자칭한다. 아귀레는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인물인데 어느 것을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첫째는 나치즘의 은유다. 딸과의 혼인을 통해 순수한 핏줄을 간직하겠다는 그의 야심은 히틀러와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의 혈통에 관한 집착과 궤를 함께한다. 둘째는 베트남전을 겪은 미국을 풍자한 것.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던 <아귀레, 신의 분노>는 야만과 문명의 충돌에 관한 잔혹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여기 덧붙여 있는 그대로의 텍스트로 읽자면 영화는 중세시대의 모험과 반역에 관한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영화 속 아귀레는 인간 역사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과 광기를 한덩어리로 응축하고 있는 인물이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흥미롭게도, 권력에 관한 드라마다. 탐험대와 행동을 함께하는 사제는 반역의 순간, “종교는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에 서곤 했다”라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뿌리친다. 아귀레는 대장 우르수아를 제거하지만 그를 대신해 다른 귀족을 수장으로 추대한다. 자신은 배후에서 모든 행동을 조종하면서 말이다. 아귀레 일행은 뗏목을 타고 방황하면서 아마존 일대의 땅을 제멋대로 자신들 소유로 만들고 다닌다. 일행이 의지하는 뗏목은 화장실에서 음식 분배에 이르기까지 중세시대 권력관계의 축소판이다. 권력과 소유의 문제, 그리고 종교의 무력함을 고발하면서 영화는 인물들의 떼죽음을 결말로 삼는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원숭이 무리에 둘러싸이는 순간에 이르러 <아귀레, 신의 분노>는 그로테스크함의 미학을 뱉어낸다.

△ 강을 따라가면서 선발대는 여러 가지 위기를 만난다. 반역으로 새로운 왕이 추대되고 대장이 살해되며 홍수로 불어난 물에 휩쓸리는가 하면 인디오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한다.

헤어초크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지닌 연출자다. 그는 다큐멘터리 작업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는데 이 경력은 영화에도 스며들어 있다.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긴장감을 높인다. 아귀레 일행이 오지를 헤매고 다니는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귀레 등은 간헐적으로 아마존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이고 다니는데 극의 흐름이 격해질 때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거칠어지고 편집 속도는 배가된다. 그렇지만 핸드헬드 카메라의 응용이 고다르 등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처럼 영화전통을 거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헤어초크 감독의 영화스타일은 독일 표현주의에 뿌리를 둔 것으로 고전적이며 음습한 기운을 품고 있다.

“난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영원할 것이다.” 영화 막바지에 아귀레는 이렇게 외친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과잉이 미덕이 되는 희귀한 영화다. 인물 대사는 격하며 그들의 언행은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내 영화들은 아마도 50여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헤어초크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남긴 적 있다. 인류의 미래가 앞으로 비극과 눈물, 그리고 전쟁의 역사로 이어진다면 그의 이야기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새로운 영화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언제든 컬트로 영접할 수 있는, 영화의 신대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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