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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썸 오브 올 피어스
2002-07-30

■ Story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을 예상해낸 CIA 연구원 잭 라이언은 국장 빌 캐봇과 함께 러시아 핵사찰의 임무를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잭 라이언은, 사라진 세명의 핵물리학자가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을 부추겨 새롭게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네오 나치의 핵폭탄 테러계획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잭 라이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탄은 이미 미국의 볼티모어 슈퍼볼 경기장을 잿더미로 만들고 미국과 러시아는 전쟁 직전에 이르는 대치국면을 맞게 된다.

■ Review

일단 단순하게 편을 좀 가르자. 엘리트적인 이미지와 젊은 총명함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각인시키며 할리우드의 지성으로 등장했던 벤 애플렉의 잦은 블록버스터 출연에 마땅찮아하는 사람, 또는 월드컵 기간 동안 집 밖에 나가는 것이 내내 두려웠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어김없이 올해 여름에도 모건 프리먼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또는 케빈 코스트너의 어설픈 연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꿈의 구장>인 사람은 극장으로 달려가보는 것이 좋겠다(감독 필 앨든 로빈슨에게서 그때의 감성을 찾아보긴 조금 힘들지라도).

무엇보다도 기준은 톰 클랜시이다. 그의 소설의 팬이거나 그것을 영화화한 <붉은 10월> <긴급 명령> <패트리어트 게임>의 추종자들이라면 올 여름에도 영화보기의 즐거움은 살아 있는 셈이고, 톰 클랜시 소설의 모티브에 여전히 동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악몽 같은 억지를 다시 한번 들어야 하는 것이다.

톰 클랜시의 1991년 소설인 <썸 오브 올 피어스>가 지금 시기에 영화화된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점은 영화를 마주하는 순간 알게 된다. 그들만의 축제라는 표현이 참으로 어울리는 슈퍼볼 경기에서 핵폭탄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미국 경제의 성전이었던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는 것만큼 상징적이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현실의 잔해 위에, 영화는 안타까운 추모와 고취적인 애국심의 몸짓을, 그리고 가려진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상업적 기획의도를 은근히 덮어놓는다. 그럼으로써 9·11 사건의 어두운 현실은 영화의 내러티브와 겹쳐지고, 영화적 충격은 상승의 흐름을 탄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2>를 누르고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는 것은, 적어도 2주간 현실적 친화력이 신화적 상상력을 저지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썸 오브 올 피어스>는 동시기에 개봉된 <스타워즈> 시리즈와는 완전히 반대의 전략지점에 서서 또 다른 블록버스터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똑같이 전쟁의 국면을 끌어들인다 할지라도, <스타워즈>는 지구의 역사, 현실의 시간 위에 놓여 있지 않다. 은하계는 너무 넓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화화된 역사는 상상적 부연의 자유로움으로 마음껏 조작되고 덧붙여지면서 확장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썸 오브 올 피어스>의 극적 구성은 지속적으로 현실의 기억에 매달린다. 현실의 소환에 응하면서 소급되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혹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진행태들 속에서 가능성의 긴장감을 이어가며 가상의 시나리오를 작성중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체첸의 분쟁, 신나치의 준동, 러시아와 미국의 전쟁은 등 뒤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체감적인 ‘공포’인 셈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러시아의 대통령 네메로프가 닭살 돋는 우정으로 케네디의 말을 인용하듯, 우리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지구라는 별에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적 상상의 관용도를 인정하면서도 되풀이해서 어떤 현실적인 책임감을 묻게 된다.

톰 클랜시 소설의 영화화가 그것을 비껴나거나, 아니면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언제나 미국이 아닌 제3국(<패트리어트 게임>의 아일랜드공화군), 내지는 광기에 휩싸인 제3진영(<긴급명령>의 콜롬비아 마약단)이다. 아니면, 미국에 무릎 꿇는 것을 전제로 하는 우정이다(<붉은 10월>의 망명). <썸 오브 올 피어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핵’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는 역시 미국 아닌가? 고래보다 새우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쨌거나, 블록버스터로서 <썸 오브 올 피어스>가 영화적 흥미로움을 제공하는 방향은 공적 사건들의 거대 스케일에 의한 긴장보다, 그것들 사이에 끼어들어 소소한 극적 표현수단이 되는 개인성에 더욱 짙게 장치되어 있다(그러니까 기관총의 연발이나 육체의 기하학을 즐기고 싶은 ‘액션 무비’광들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외상을 불러오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하겠지만, 폭탄이 터지는 장면은 간접적인 수위에서 그친다. 오히려 경기를 즐기려는 각각의 사람들, 즉 아이와 가족, 친구들의 모습이 폭발 직전의 위험성을 고조시킨다. 더러는 위험천만의 가능한 역사가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조정될 수 있음을 감지하게 해준다. 감정에 휩쓸려 욕지거리를 내뱉는 대통령, 또는 원탁의 기사들처럼 모여앉은 단지 몇몇의 개인들에 의해 전세계의 역사가 뒤바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공포가 신경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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