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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2002-08-06

■ Story

학교 다닐 때부터 주변 남녀 짝지어주기를 좋아하고 잘했던 효진(신은경)은 성공확률 100%를 자랑하는 유능한 커플 매니저가 돼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남자친구와의 결별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은 채 ‘임자 있는 몸’으로 위장하고 다닌 지 어언 1년째다.

그런 효진 앞에 외모와 학벌, 집안, 성격 등 모든 조건이 완벽한 VIP 고객 현수(정준호)가 나타나는데, 그는 지각 아니면 펑크를 일삼는 불량 고객이기도 하다. “고객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닌 프로 매니저 효진은 현수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한다.

■ Review

극장 커플석을 메운 연인들 사이로 불편한 표정의 여자들이 궁시렁댄다. “해피엔딩 좋아하시네. 나 로맨틱코미디 안 본다고 그랬지.” “그냥 성룡 나오는 액션 볼걸.” 만남부터 엇갈린 남녀주인공이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가, 키스신을 끝으로 행복한 결합을 알리는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이 뻔한데다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는 첫머리에서 조연배우들의 입을 빌려 로맨틱코미디의 그렇고 그런, 뻔한 수순 따윈 밟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아님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의 한계에 솔직해지자는 의미의 자기 희화화일까.

어느 쪽이든, 이 영화, 시작부터 용감하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는 그러나,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비틀거나 뒤집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형을 충실히 따라가는 편에 가깝다. 남녀가 만나고 호감을 느끼고 약간의 오해와 현실의 걸림돌에 멈칫대다 행복하게 결합한다. 따지고보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의 변형”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세상의 모든 로맨틱코미디는 태초의 로맨틱코미디의 변형’인 것이다. 그저 변화하는 세태를 영화가 뒤따라 반영하는 것뿐. 지금은 미디어가 발벗고 나서서 남녀의 연애와 결혼을 선동하는 시대가 아닌가. 결혼정보회사가 새 시대 로맨스의 둥지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영화는 남녀의 성대결을 기본 골격으로 하는 할리우드의 스크루볼코미디보다는 개성이 강한 캐릭터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따라잡는 캐릭터코미디쪽으로 기울어 있다. 주인공 효진의 묘사에 특히 그런 혐의가 있다. 효진은 남들 맺어주기엔 도가 텄지만 정작 자기 앞가림은 못하고 있다. 툭하면 다리에 쥐가 나서 어기적대며 걷고, 자동문에 얼굴이 끼거나, 맨홀에 빠질 만큼 칠칠맞은 여자다. 그런 그녀가 변한다. 스타일 구기는 실수를 저지르는 건 여전하지만, 타칭 “남자친구 없게 생긴 눈썹”을 다듬고, 이부자리를 에워싼 방안 쓰레기도 말끔히 치워버린다. VIP 고객 현수를 남자로 느끼면서부터다.

♣ ˝저,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조폭마누라>를

기억하는 관객은 이 대사에 웃게된다(왼쪽). 뭐든 들어주는 준은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좋은 ˝남자˝ 친구다(오른쪽).

그런데 이상하게도 효진의 캐릭터는 디테일은 생생하되 큰 흐름은 잡히지 않는다. 현수와의 상호작용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인데, 현수는 효진이라는 신데렐라를 구원하기 위해 재림한 왕자로, 벽에 걸린 정물화처럼 생동감이 없다. 그들이 어쩌다 서로에게 호감을 품게 됐는지, 눈으로든 가슴으로든 느끼기가 힘들다. 주변 캐릭터의 다양한 개성과 적잖은 비중도 이들 커플에 대한 집중도를 흩뜨린다. 효진이 원하는 건 뭐든 ‘슬쩍’ 해주는 남자친구 준, 실연당하고 공기총을 드는 선배 해인, 노처녀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달래는 폭식 3인방 등이 그들. 이들에게 휩쓸려 웃다보면,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미팅 이벤트에서 몰아쳐야 할 감정의 파고가 전해지지 않는다.

다양한 패러디와 발랄한 시각적 장치 등 소소한 재미는 많다. 효진(신은경)의 고객으로 등장한 박상면은 “작년에 어디서 많이 뵌 것 같다”며 <조폭 마누라>의 추억을 떠올리고, 효진의 친구들은 <텔미썸딩>(같은 작가 작품)의 토막 시체에서 머리가 누구 것인지를 놓고 입씨름을 한다. 효진의 주위를 맴도는 엽기 커플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거리의 악사를 연상시킨다.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대머리를 타고 흘러내리거나, 여자들의 이상형이 아바타로 뜨고 사라지거나, 효진의 고객들이 파친코 화면처럼 위아래로 돌아가며 소개되는 장면도 꽤 재치있다. 이처럼 주인공 커플을 따라가는 사이, 여기저기 한눈 팔 데가 많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

일찍부터 이 영화가 화제를 뿌린 것은 충무로에서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하다 발탁된, 젊은 여성감독 모지은 때문이다. 감독 본인은 ‘젊다’거나 ‘여자’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것, 그래서 어떤 색깔, 어떤 형태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덧입혀지는 것을 경계하지만 말이다. 모지은 감독은 “로맨틱코미디는 판타지”라고 일갈하며, 그 연출의 변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하고 달큼한 영화를 내놓았다. 하지만 데뷔작에서 기대할법한 어떤 뚝심이, 패기가 아쉽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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