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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른살 감독의 신선한 데뷔작, <프릭스>
2002-08-27

■ Story

애리조나주의 포로스퍼리티라는 폐광촌을 지나던 트럭 앞에 갑자기 토끼가 나타난다. 토끼를 피하려던 트럭은 전복되고 싣고 있던 유독폐기물 드럼통이 하천으로 떨어져 오염물질이 유출된다. 이 마을 근교에서 수백 마리의 거미를 키우는 괴짜 조슈아를 찾아간 마이크(스콧 테라)는 그가 이 하천에서 잡은 귀뚜라미를 거미 먹이로 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귀뚜라미를 먹은 거미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몸이 불어난 거미는 조슈아를 공격한 뒤 우리를 벗어나 마을로 쏟아져 들어온다. 사람 몸뚱이보다 커진 거미들의 거센 공격에 맞서 보안관 샘(캐리 뷰러)과 크리스(데이비드 아퀘트)를 비롯한 주민들은 총을 들고 나선다. 변종 괴물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Review

<스파이더 맨>에 이어 올 여름 시즌을 찾은 두 번째 거미의 정체는 오염된 화학물질 때문에 몸집이 거대해진 변종괴물 거미다. 뛰어난 실 잣기 능력을 가졌으나 아테나의 저주 때문에 평생 몸에서 실을 뽑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거미가 됐다는 아라크네의 전설 이래, 거미는 갖가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왔다. 생태학적으로는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이지만, 8개의 다리를 가진 흉측한 모습과 먹이의 수액을 빨아먹는 엽기적인 행태 때문에 악역을 주로 맡아온 것이 사실.

<프릭스>의 거미 또한 인간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는 존재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과부거미, 깡충거미, 타란튤라 등 무시무시한 외모의 거미들은 자신의 특기를 십분 활용해 애리조나 깡촌의 주민들을 사냥한다. 사람들을 붙잡아 거미줄로 칭칭 감아 고치로 만들거나, 사막을 붕 날아 달리는 오토바이를 덮치기도 하며, 땅바닥의 함정 속에서 호시탐탐 행인의 발걸음을 노리기도 한다. 이들 여덟개의 다리를 가진 괴수는 심지어 쇼핑몰의 텐트 안에 숨어서 위장공격을 시도하기도 하니, 다리 두개짜리 나약한 존재들의 어설픈 저항은 피를 불러올 뿐이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창조된 거미들의 화려한 묘기와 함께 이 영화는 다소 엉뚱한 유머를 통해 승부한다. 석고보드에 생생한 데드마스크를 남기는 고양이의 최후나 사슴머리 박제에 달려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거미의 모습 등 <프릭스>가 구사하는 유머는 엽기농담 수준이다. 데이비드 아퀘트가 이전과 같은 바보연기를 보여주진 않지만,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재미를 찾는 것(과 <텍사스 연쇄살인마>의 만남 등등)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등 뒤의 거미를 피해 스크린 앞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의 놀란 표정은 호러영화 클리셰의 의도적 반복이지만, <프릭스>는 이를 슬쩍 뒤트는 재치도 보여준다. 거대한 거미를 코앞에 둔 절체절명의 순간, 아퀘트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향수를 뿌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서 손색이 없다.

♣ 마을의 폐광은 거미들이 숨어살며 왕국을 만들기 유리한 곳이다. 또 주민들로서도 일거에 이들을 소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어 이곳에선 항상 긴장이 넘쳐흐른다.♣ CG로 만들어진 왕거미들의 모습은 실감나고 흉측하지만, 왠지 촌스러움 같은 친근함도 느끼게 해준다. 때문에 관객은 공포와 웃음 중간 어딘가의 감정을 갖게 된다.

비단 TV화면을 통해 <지구 대 거미>(1958)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가 변종괴물의 습격을 다룬 1950년대의 B급 호러영화에 오마주를 표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종괴물의 출현으로 고립된 공간의 인간들이 경악에 빠진다는 설정이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디자인된 거미들의 모습은 이 영화의 뿌리를 알려준다. 하지만 <Them!>을 위시한 50년대 고전 B급 호러영화들이 핵실험 이후 돌연변이를 일으킨 생물들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괴물의 출현과 이로 인한 인간관계의 혼란상은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프릭스>가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유독 폐기물을 몰래 매장하려는 세력의 음모와 환경파괴의 위험이라는 ‘교훈’을 붙들고 있는다 해도 거미들이 인간을 그토록 잔인하게 사냥하는 이유를 찾기란 난망하다.

거기에 만약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이 영화의 감독 엘로리 엘카옘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작품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 뉴질랜드 출신의 엘카옘 감독은 1997년 <라저 댄 라이프>라는 13분짜리 단편영화로 명성을 얻은 신예. <프릭스>처럼 거미의 습격을 다룬 이 영화는 스웨덴 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텔룰라이드영화제를 통해서 <인디펜던스 데이>의 롤랜드 에머리히와 딘 데블린의 눈에 띄게 됐다. 2000년 연출한 TV영화 <그들이 깃들다> 또한 무자비한 식인 바퀴벌레들을 다뤘다니, 그는 분명 다리 여러개를 가진 생물들에 매료됐거나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건 <프릭스>는 30살 젊은 감독의 데뷔작다운 신선함이 엿보이는 영화다. 뭔가 썰렁해보이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유머는 나름의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연기 또한 일정한 질서가 느껴진다. 시대의 트렌드를 뒤쫓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구성의 재미를 한껏 담아냈다는 점 또한 칭찬받을 만하다.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에 대해 “끊임없는 영화 예고편을 보는 대신 정말 영화를 봤다는 것 같은 느낌을 남겨줄 것”이라고 호평했다. 문석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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