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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결여된 또 하나의 재난영화 <K-19>
2002-10-01

■ Story

1961년, 냉전 상황의 소련은 미국에 버금가는 핵잠수함 K-19호를 건조해 견제를 유지하려고 한다. K-19호는 미사일 테스트를 임무로 부여받고 출항한다. 그러나 새로 부임해온 함장 알렉세이 보스트리코프(해리슨 포드)와 대원들은 내부적인 불화를 겪는다. 대원들은 당의 의지만을 우선시하는 함장을 대신하여 부함장 미하일 폴레닌(리암 니슨)을 함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한 K-19호는, 그러나 원자로의 이상으로 핵폭발을 일으킬 위기에 처한다. 눈앞에 닥친 3차대전.

■ Review

난니는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부엌을 서성거리며 영화의 대사를 중얼거린다. 그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오늘 아내와 함께 신중에 신중을 기해 영화 한편을 골라 극장을 찾았었다. 그리고는 한밤중에 머리칼을 움켜쥐고 내뱉는다. “내 아이에게 이런 한심한 영화를 보여주다니!” 영화 에서 난니 모레티가 <스트레인지 데이즈>에 보내는 시선이다.

캐스린 비글로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남성들의 판타지가 주동하는 장르의 컨벤션 내에서 캐스린 비글로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스타일로서의 자극을 동시에 겸비하면서 자리찾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스트레인지 데이즈>는 태어날 아기가 아니라, 정상적인 어른이 봐도 몹쓸 만한 영화가 되어버렸고, 그 후유증에서 <웨이트 오브 워터>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다시 로 진로를 선회한다.

사실상, <K-19>는 의심스럽게도 웅장한 오른손잡이 영화의 울림을 지니고 있으며, 그곳에 타고 있는 모든 승무원들은 배달의 기수처럼 그려진다. 여기서 국적은 소련이건 미국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톰 클랜시의 음성이 스크린을 떠돌아다니는 것은 단지 잠수함이 배경이 된 영화이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은 캐스린 비글로의 원대한 사상전향(?)의 결과도 아니다. 오히려 잠수함이라는 밀폐된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K-19>가 재난영화에 속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 중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가열된 원자로가 터질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으로 인해 승무원들 또는 전세계인이 죽음에 이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 재난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희생의 의지들이 필요해진다. 더욱이 그 희생을 가슴에 묻어주기 위해서는 완벽한 세트들이 실어주는 재현적 공포가 실재로서 다가와야만 한다. 실화를 매개로 <웨이트 오브 워터>와 동일한 출발을 보이는 <K-19>는, 그러나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구성해나가는 1800년대의 살인사건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고증으로서의 완벽함과 그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공간에서의 디테일들이 만들어내는 역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런 물화적 재현의 욕망이 영어를 사용하는 소련인, 소련으로 건너간 미국의 영웅주의, 영웅들이 펼쳐내는 위기와 휴머니즘의 드라마와 뒤섞이면서 스케일의 거푸집을 유지한다.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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