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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다바리’가 되어드립니다
2001-04-11

아줌마가 남자들 부러워하면서 <친구>를 두 번씩 본 이유

최보은/ 아줌마 femolution@dexmedia.co.kr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의 연기가 어떠리라는 건, 국내에서 발행되는 영화주간지 세 개가 일제히 그의 얼굴로 표지를 도배한 지지난주에 이미 감잡았고,

실제로도 감잡은대로였다. 게다가 장동건의 연기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한국영화에서 ‘배우들 연기가 된다’는 것은 일단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할만한 이유가 된다.

언론들이 일치단결해서 흥분하는 걸 보고, 게으른 아줌마도 이번만큼은 개봉 당일 서둘러 극장에 달려갔고, 모처럼 돈 아깝다는 생각없이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보고난 뒤, 맨날 ‘여자 여자’를 입에 달고 살면서 100% 수컷 정서인 이 영화에 매혹됐던 자기 감정의 실체가 좀 궁금해졌고,

그래서 그 이튿날 한번 더 봤다.

그 결과, 아줌마는 자신이 수컷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수컷들의 세계를 동경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들의 의리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신세타령을 열심히 들어주거나 꿔간 돈을 제때 갚거나, 친구의 애인이 아무리 맘에 들어도 가로채는 짓 따위는 자제하는 수준인데, 남자들은

“한 놈 찍어라. 직이주께” 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건달노릇 못하게 되면 개인택시 한 대 뽑아달라”고 부탁해도 되는 사이인 것이다.

IMF가 한창일 때 만난 한 초보 택시운전사가 생각난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설업을 하던 그는 IMF 직격탄을 맞아 부도를 내고 도망다녔는데,

친구들이 돈을 모아 8천만원짜리 전셋집도 얻어주고 개인택시도 뽑아주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 있는 남자들의 끈끈한 유대가

징그러운 한편으로 한없이 부러웠다. <친구>와 관련해 아주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제공해서 남편없는 아줌마를 기죽게 만든 오은하 아줌마의 남편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잘 나가는 신문기자라지만 전세 사는 월급쟁이 처지에 친구 형의 부탁으로 몇천만원을 은행대출해서 빌려준 이유가 뭐겠는가.

오은하 아줌마도 그간 남편 못지않게 돈을 벌었지만, 곤경에 처한 여자친구를 위해서 그만한 돈을 선뜻 꾸어줄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아줌마로 말하자면, 능력이 없어서 자신있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능력만 된다면 친구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물론 능력이 있더라도, 남편 먼저 자식 먼저 챙겨야 하는 데다 그런 커다란 예산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결정권이 없는 여자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그러기가 쉽지 않지만. (여자들이 경제권 다 뺏아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알고보면 여자들이 잘나빠진 월급봉투 관리할 동안

남자들은 나라금고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월급봉투의 관리권 또한 남편 자식 부모를 위해 우선적으로 쓰겠다는 암묵적 전제 아래 맡겨졌다는

사실을 명심하실 것.)

이 대목에서 촌철살인하기로 유명한 이 잡지의 전 편집장 조선희씨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죽여주는 대신 개인택시’ 대목에서 난 여자들의

우정에 열등감을 느꼈어. 아무리 친구사이라도 주고 받을 게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우정은 다른 것같애. 그게 권력이든 돈이든 주먹이든,

상대방을 위해서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우정은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화된다고 봐.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데 여자들은 권력도 돈도 주먹도 가지고 있지 못하잖아.”

사회생활하면서, 여자와 남자의 힘의 차이란 알통의 크기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는데, 다시 말해서 여자는 개인이고 남자는

집단이더라는 것이다. 남자 사원 하나를 뽑으면, 그가 거느린 그림자 집단이 고스란히 그 회사의 간접 자산이 된다. 고향사람들, 군대와 학교

선후배가 의리로 똘똘 뭉쳐, 공사 불문하고 아쉬울 때 그의 원군이 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상시대기중인 것이다. 그러니 친구나 선후배의 용도가

그렇게 실제적이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나이브한 여자들이 어떻게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겠나 말이다.

그래서 아줌마는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도 집단이 되는 것인데, 유식한 말로 하면 “여성들의 연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몇년전부터 아줌마는 (내 딸들만큼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겠다는 아주 이기적인 목적에서) 다음과 같은 종목들을 ‘열씨미’ 실천해나가고

있다. 잘 나가는 여자 질투하지 않고 더 잘 나가도록 밀어주기, 필요하다면 ‘시다바리’ 기꺼이 해주기, 남편 자식한테만 매달려 살지 않고 평소에

주변 여자들 부지런히 챙기기, 개인적으로 싫은 여자도 사회적으로 좋아하기, 어떤 여자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그 여자가 알고보면 방귀 잘 뀐다더라는

식의 놀부짓 하지 않기, 능력 있는 여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소문 내주기, 한영애 과라도 그게 여자라면 표 찍어주기(욕해도 좋다. 하지만 아줌마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그를 찍을 작정이다. 멸종 위기의 동물은 그게 해충이라도 보호해야 하고, 프런티어를 개척한다면 그게 진보파 낫이든

보수파 낫이든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논리에서.), 딸들 옷사줄 돈 아껴서 여자정치인 후원금 내기 등등.

예를 들어보자면, 조선희씨가 어떤 잡지 편집장하고 아줌마가 그 밑에서 ‘시다바리’하던 시절, 자존심 상하고 질투심 들끓고 미워서 죽을 지경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이런 대승적인 경지에 입각해 대처함으로써 둘도 없는 친구를 잃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아줌마 인생에 생물학적 발정기는 거하고, 사회학적 발정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성질 못된 조 아무개와, 미모나 주먹실력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의 ‘시다바리’ 노릇만 한 아줌마는, 지금쯤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해 서로 많이 컸느니, 하와이는 니가 가라느니 하는 대사를 읊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독자들은 이런 글 대신 유오성 장동건씨한테 그네 앞에서 좀 만나면 안되겠느냐고 칭얼대는 러브 레터 아줌마 버전이나 읽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친구야, 내가 글쟁이 노릇도 못하게 되면 개인택시 모는 남자 하나만 뽑아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