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씨네클래식
이유란의 영화사 신문 제1호(2)
2002-10-30

영화사 신문

곤니치와, 시네마!

인도에 이어 일본에서도 상영, 확산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듯

1897년 2월15일 시네마토그라프가 일본 고베의 한 극장에서 선보였다. 아시아에서는 지난해 7월7일 인도 봄베이 상영에 이어 두 번째다. 시네마토그라프의 아시아 상영은 다른 대륙에 비해 늦은 편이이서, 유럽 각국은 물론 남아프리카, 이집트, 멕시코 등 이미 세계 주요 국가들에 시네마토그라프 상륙이 완료되었다.

그랑카페 상영 성공에 고무된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라프를 사겠다는 주문을 거절하고 직접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1896년 초부터다. 1896년 6월17일 러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인트페트르부르크에서 영화가 상영됐고, 6월26일 뉴욕에서 미국 내 첫 상영이 성황리에 끝났다.

이같은 직접 상영 방식은 뤼미에르사에 흥행수익 이외에 또 다른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해외에 파견한 기술진들이 각국의 풍경을 촬영한 영화들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 일부는 진일보한 기술을 보여줬다. 촬영기사 외젠느 프리미오는 1896년 삼각대에 얹은 카메라를 곤돌라에 설치해 베니스의 풍경을 찍어 보냈는데, 영화의 화면이 이동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어 프리미오와 동료들은 이러한 실험을 계속해 카메라를 보트와 기차 위에 설치해 화면이동을 만들어냈다. 이렇듯 시네마토그라프는 이미 세계적인 발명품이자 볼거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부터 뤼미에르사가 시네마토그라프를 판매하기 시작함에 따라 확산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토막상식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ghe)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단어는 시네마토그라프가 첫 상영되기 3년 전에 태어났다. 1892년 레옹 기욤 불리가 연속사진을 영사하는 광학기계의 발명특허를 내면서 그리스어 움직임(kinema)과 기록하다(grafhein)를 합성해 이 용어를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cynematograghe로 등록했다가 다음해 새로 특허 등록을 하면서 Y를 i로 고쳤다. 하지만 이 단어가 너무 길어서 얼마 안 가 시네마(cinema)로 줄여부르기 시작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