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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영화의 경쟁자는 TV가 되었지˝
2002-10-31

TV드라마 <아씨>의 폭발적 인기몰이, 극장가는 청춘물로 승부하다

<맹물로 가는 자동차>에 이어 개봉한 <속 이별>(1974)은 선 굵은 외모에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던 패티 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였어. 그녀의 경력 중 유일무이한 스크린 나들이일 텐데, 여배우의 서구적인 마스크를 잘 살려내기 위해 나 역시 카메라 구도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었지. 딸을 키우며 혼자 살아가는 인기 여가수가 죽은 남편의 고향을 찾았다가 자유분방한 아내 때문에 고민하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실은 바로 전해에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이별>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어. <이별>이 크게 히트를 하자, 내용과 캐릭터는 다르지만, 제목을 그대로 따온 거지. (웃음) 물론 신 감독도 흔쾌히 허락을 했고.

60년대 후반을 거쳐 70년대 들어서면서, 아줌마 관객을 텔레비전에 뺏긴 영화계는 젊은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어. 60년대 후반에는 중앙의 5개 라디오 방송국이 방송한 연속극의 총수가 한해 160편에 달했고, 치열한 청취율 싸움이 벌어진 바 있지. 특히 1966년 MBC가 가을 개편 때 신설한 <전설 따라 삼천리>는 해설을 맡은 성우 유기현의 독특한 목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으로 10여년 동안 MBC 라디오의 대표주자였어. 더구나 당시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있던 시점이라 라디오 연속극은 쓰기만 하면 대본이 영화로 팔려나가고 인기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방송도 되기 전에 영화사에서 제목만 보고 계약을 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났지. 당시 충무로의 ‘시사통신사’(時事通信社)는 영화, 방송 등 문화·연예계에 정통한 통신사로 알려져 있었어. 시사통신에 방송사에서 기획하는 다음 연속극의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는 고정란이 있었는데 여기 소개된 작품 내용만 보고 영화사들이 앞다투어 작가들을 찾아다녔어.

1967년은 라디오 드라마에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열풍이 몰아친 해로, 동아방송의 <조선 총독부> <태평양전쟁>과 동양방송의 <광복 20년> <근세 대한 백년>, 문화방송의 <북한 7,300일>, 기독교 방송의 <한국 기독교 70년사> 등 다큐멘터리 드라마 경쟁이 본격화됐지. 이같은 현상은 그뒤 MBC가 개국하고 점차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라디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인식되면서 더욱 성해졌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968년은 라디오 연속극이 범람한 해야. 이 해를 정점으로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텔레비전 연속극 시대가 열리면서 라디오 연속극은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지지. 그동안 전성기를 누려온 라디오라는 음향매체에서 70년대 들어서 텔레비전이라는 영상매체로 넘어가는 결정적 시기를 맞은 것이야.

텔레비전 일일극이 방송의 꽃으로 자리매김하는 일대 전환점이 마련되는데, 그 계기를 제공한 것이 1970년 3월2일부터 TBC에서 9시40분에 방영하기 시작한 임희재작 <아씨>였어. 자기 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간 한 여인의 한평생을 통해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을 그린 <아씨>는 다음해 1월까지 253회에 걸쳐 방영되면서 텔레비전 단일 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지. 초창기 일일연속극들이 대부분 20∼30회로 횟수가 제한되던 관례에 비하면 <아씨>의 방영 횟수는 기록적인 것이었어. 이 드라마의 선풍은 텔레비전 3국이 1971년에 하루 3편, 1972년에는 하루 4편의 일일연속극을 제작 방영하는 일일연속극 전성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 이런 분위기에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제작자들은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젊은 관객의 시선을 끌고자 했지. 그렇게 등장한 영화가 바로 <고교얄개>(1977, 석래명 감독), <괴짜만세>(1977, 이형표 감독) 등의 이승현표 하이틴영화‘얄개 시리즈’와 전영록 등의 인기 가수가 직접 등장하는 <미인>(1975, 신중현·이남이 주연), <제7교실>(1976, 임예진·전영록 주연), <너무 너무 좋은 거야>(1976) 등이 마구 쏟아지게 되지. 거기에 난 누구보다 빨리 적응한 거고, 제작자들이 가져다놓는 고만고만한 비슷한 기획들에 파묻히는 꼴이 됐어. 그러나 그러한 청춘물의 제작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한 것일 뿐 나의 사상이나 취향과는 상관없었지.

구술 이형표/ 1922년생구술 50년대 미국공보원(USIS)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에서 군 홍보 및 기록영화 제작구술 미국 <NBC> <CBS>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뉴스 제작구술 60년대부터 극영화 86편 작업구술 <서울의 지붕밑> <말띠 여대생> <애하> <너의 이름은 여자> 등구술 80년대 중반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관 기획, 설계, 시공 총괄구술 현재 등급위와 진흥위원회에서 활동 중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