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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신문 제 3호 (1904~1907) [1]
2002-11-28

격주간 · 발행인 안정숙 · 편집인 이유란

세계 영화시장은 누구 손에?프,파테와 고몽의 선두다툼 치열

세계영화 시장을 둘러싸고 프랑스의 파테와 고몽의 선두다툼이 치열하다. 현재까지 우세는 파테에 기울어 있지만, 파테보다 1년 늦게 영화제작에 나선 고몽의 추격도,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1896년 설립된 파테 프레르는 1907년을 지나면서 생필름과 카메라, 영사기 생산에서 영화의 제작과 배급, 상영까지 총괄하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화사로 급성장했다. 파테의 성장은 실로 눈부시다. 파테는 1905년 이미 3개의 스튜디오에서 많은 영화를 제작했으며, 제작된 영화 프린트는 뱅센에 있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돼 상영업자들에게 판매되었다. 이어 파테는 영화상영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다. 곧 1906년에 들어 유럽 각지의 극장들을 사들였으며 파리에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극장을 직접 짓기도 했다. 여기에 힘입어 파테는 1907년 영화를 상영업자에게 판매 처분하는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프린트를 ‘임대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업 확장으로 파테는 영화제작과 배급에 관련된 전 공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파테의 거의 유일한 경쟁사인 고몽 또한 파테의 사업확장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하며, 파테의 뒤를 바짝 좇고 있다.

두 회사의 성공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이들이 만든 영화의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꼽을 수 있다. 파테를 키운 ‘미다스의 손’으로는 페르디낭 제카와 막스 렝데를 꼽을 수 있다. 1901년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제카는 곧 속임수 영화, 사극, 종교극 등 거의 모든 장르에 통달했으며, 특히 브라이튼 학파의 영향을 받은 ‘추격영화’에서 두각을 보였다. 스튜디오를 벗어나 파리 시내에서 찍은 그의 추격영화들은 생생하고 독창적이다. 반면 1905년 파테가 발탁한 막스 렝데는 <독약> 같은 코미디에서 걸출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고몽은 1905년 새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앨리스 기의 지휘 아래 다수의 영화제작인들을 영입했다. 제작총지휘자로서 앨리스 기는 신인들을 훈련시켰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 루이 푀이야드이다. 시나리오 작가로 고몽에 취직한 루이 푀이야드는 1906년 코미디와 페르디낭 제카풍의 추격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같은해 능력을 인정받아 앨리스 기의 뒤를 이어 고몽 영화제작부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영화 읊어주는 사람아시아 토착적 영화문화 생겨, 일본은 변사 등장·중국은 경극 영화화

유럽과 미국에서 영화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근대화가 한창 진행 중인 아시아에서는 ‘동도서기’(東道西器)식 영화의 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곧 자국의 문화전통과 서양에서 건너온 영화기술을 결합해, 고유의 영화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변사(辯士). 변사란 스크린 곁에서 대사와 줄거리를 말로 들려주는 사람을 말한다. 초대 변사로 유명한 인물은 소메이 사부로오로 그는 1903년 도쿄에 등장한 첫 번째 전문영화관 아사쿠사 전기관에서 활동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런 존재가 있긴 하지만, 일본처럼 영화상영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며 직종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변사의 출현은 분라쿠나 가부키 등의 전통 연희 양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있다. 분라쿠에 기타유의 해설이 붙거나, 가부키에서 무대 위에 연출된 무언극에 무대 밖 화자가 그 줄거리를 보태는 것 등 일본 전통예술에서 이런 해설자는 거의 상식이었다. 또한 일본의 영화제작자들은 서양에서 수입한 카메라로 일찍부터 가부키 예인들의 공연을 기록해오고 있다. 마키노 쇼오조오는 1904년 가부키극단 배우들을 출연시켜 가부키 시대극인 <혼노지오의 갓셍>(本能寺合戰)을 만들었다. 세기 초 등장한 새로운 연극 양식인 신파극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중국에서도 영화는 전통예술을 재현하는 도구로써 활용되고 있다. 그러한 최초의 시도가 1905년 베이징의 펑타이사진관에서 만든 <딩쥔산>(定軍山). 최초의 중국영화이기도 한 <딩쥔산>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기초한 동명의 경극에서 세 장면을 뽑아 20분 분량으로 촬영한 것이다. 한편,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서는 1903년에 한성전기 기계창고에서 영화가 일반 대중에게 첫 상영된 이래 그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1907년에는 한성전기 마당이 ‘광무대’라는 이름의 공연장으로 꾸며져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단 신 들

이·러 등 영화산업 기지개

이탈리아, 러시아 등 유럽 각국의 영화산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먼저 이탈리아에서는 영화사 치네, 암브로시오가 설립된 데 이어 1906년에는 이탈라가 만들어졌다. 이로써 이탈리아 영화산업은 치네, 암브로시오, 이탈라의 삼파전 양상을 띄게 됐다. 이 회사들은 주로 이탈리아의 문화적 자산, 곧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주제를 빌려 사극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1905년에 만들어져 커다란 성공을 거둔 <로마의 점령>도 그런 영화다. 덴마크 또한 한해 60여편의 영화를 내놓으며 영화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덴마크를 대표할 만한 제작자는 올레 올센. 극장업자였던 그는 1906년 영화사 노르디스크를 설립한 데 이어 해외에도 배급지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노르디스크의 대표작은 <사자 사냥>으로 이 영화는 실제 사자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덴마크에서는 상영이 금지됐지만, 해외에서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사진가 드란코프가 1907년 모스크바에 러시아 최초의 영화제작사를 설립했다.

미, 해일의 기차여행

해일의 기차를 타고 떠나자! 1904년 해일의 기차여행이 핫도그, 아이스크림 콘과 함께 세인트루이스박람회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이래, 그 인기가 미국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해일의 기차여행이란, 기차 칸처럼 생긴 상영관에 앉아 정면 스크린에 영사되는 풍경을 감상하는 장치. 바닥에 설치된 장비로 기차가 흔들거리고 효과음이 나기 때문에 관객은 마치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듯한 스릴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영화를 보며 화면 속의 인물을 향해 비키라고 소리치는 관객도 있다고. 스크린에 영사되는 장면들은 실제 기차를 타고 촬영한 장면들. 좀더 대담한 촬영기사들은 달리는 기차의 전면에 카메라를 설치해 주위의 풍경을 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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