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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모트의 역습 액션영웅 해리의 귀환,<해리포터와 비밀의방>
2002-12-11

■ Story

더즐리 이모부 집에서 괴로운 방학을 보내며 개학을 고대하고 있는 해리 포터(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집요정 도비로부터 호그와트로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하늘을 나는 마법의 자동차를 타고 어렵사리 도착한 학교에서 해리와 론(루퍼트 그린트), 헤르미온느(엠마 왓슨)는 “비밀의 방이 열렸다. 후계자의 적대자들은 두려워하라”는 피로 쓴 메시지를 발견하고, 곧이어 머글의 피가 섞인 학생들이 괴물의 습격을 받아 돌처럼 마비되는 사건이 터진다. 뱀의 언어를 이해하는 해리가 슬리데린의 후계자라고 수군거리는 아이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비밀의 방에서 나온 괴물로부터 호그와트를 지키기 위해 지혜와 용기를 동원해 마법의 일기장, 왕거미 아라고그, 거대한 뱀 바실리스크가 등장하는 모험에 뛰어든다.

■ Review

“작은 책 한권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지. 특히 바보 같은 여자아이 손에 들어갔을 때 말야.”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비밀의 방을 여는 열쇠를 제공하는 마법의 일기장 주인 톰 리들은 씹어뱉듯 해리에게 말한다. 그의 냉소는 왕년의 문학 소녀였던 가난한 엄마 조앤 K. 롤링이 쓴 조그마한 책이 이룬 기적에 대한 자부심의 역설로 들린다. 롤링의 책을 처음 스크린에 베껴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지난해 겨울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9억6700만달러(역대 2위)를 빗자루로 쓸어담았다. 지난 몇년간 주문에 걸려 비밀의 방에 잠들어 있거나 아즈카반 감옥에서 갓 출소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제 번개 모양 흉터를 가진 꼬마 마법사의 이름을 모르기가 더 힘들다. 그러므로 <해리 포터> 연작의 2편 <…비밀의 방> 문 앞에서 혹시 1편을 못 본 관객을 배려했는지를 묻는 건 좀 열없은 노릇이다.

과연 1편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치른 <…비밀의 방>은 캠퍼스를 파악한 2학년생답게 곧장 수수께끼와 모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2편의 미스터리는 머글(마법사가 아닌 인간)의 피가 섞인 마법사 양성에 반대했던 ‘마법계의 히틀러’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오래 전 호그와트를 떠나며 미래의 후계자가 행할 홀로코스트를 위해 학교 안에 만들어놓은 비밀의 방이 열리며 시작된다. 1편을 통해 소개된 주요 캐릭터들은 2편의 미스터리를 푸는 퍼즐 조각이 된다. 비밀의 방에 갇혔던 괴물을 풀어 호그와트의 폐쇄를 기도하는 ‘후계자’는 해리의 숙적 말포이인가 아니면 홀로 뱀의 언어를 듣고 말하는 해리 자신인가 해리에게 흉터를 남긴 사악한 마법사 볼드모트와 순박한 사냥터지기 해그리드의 과거는 비밀의 방에서 어떻게 조우했는가 자연히 <…비밀의 방>에서 플롯이 차지하는 비중은 <…마법사의 돌>보다 훨씬 크다. 오색찬란한 사건, 사고와 스펙터클을 숨이 턱에 닿도록 열거하는 전개 방식은 그대로지만 질문과 단서를 뿌리고 거둬들이는 모양은 1편에 비해 한결 짜임새 있다.

퀴디치 경기용 빗자루 님부스2001은 님부스2000을 압도하고 이듬해에는 다시 성능을 높인 빗자루 파이어볼트가 님부스2001을 대체한다. 편수를 거듭하며 출력을 높여간 J.K. 롤링의 책처럼 <…비밀의 방>은 거의 모든 부품의 사양을 업그레이드한 신제품이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과 각색 작가 스티브 클로브스, 프로덕션디자이너 스튜어트 크레이그와 ILM은 액션의 강도, 특수효과의 밀도, 화면의 심도, 유머의 감도를 높이는 데 진력했다. 심지어는 남부럽지 않은 액션 시퀀스를 얻기 위해, 원작을 향한 독실한 신앙마저 잠시 저버리고 퀴디치, 거미의 습격, 바실리스크와의 최후 대결을 소설의 지시한 분량을 훌쩍 넘게 늘리고 부풀렸다. 장애물 해자를 파서 스릴을 펌프질한 퀴디치 게임과 거미의 습격 시퀀스는 다소 과하다는 인상마저 남긴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속도가 붙었다. 야외 촬영에 특기가 있는 로저 프랫의 카메라는 마치 모르도르를 향하는 반지 원정대의 등정로라도 굽어볼 것처럼 수시로 공중으로 솟구쳤다 화려한 세트로 하강하기를 반복한다. 다만 결정적 문제는 이 호화로운 성찬을 댄스 메들리가 아닌 교향곡으로 만들어줄 리듬이다. 클라이맥스에서 바실리스크의 독니에 물린 해리는 한순간 담담히 죽음과 마주한다. 그러나 영화는 구원의 복선을 매듭짓는 일을 서두른 나머지, 전체 프랜차이즈를 짊어진 어린 영웅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귀중한 몇초에 인색하게 군다.

(왼쪽부터 차례로)♣ 수수께끼 해법을 궁리하는 삼총사.♣ 2학년의 새 과목 약초학 수업시간. ♣ 도비는 해리를 돕는답시고 번번이 목숨을 위협한다. ♣ 록허트는 어두워진 속편에 유머를 주입하는 캐릭터.

모든 가속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방>이 다른 블록버스터들을 숨죽이게 하는 괴력은, 폭음과 질주를 멈추고 마법세계의 구석구석과 인물들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는 정적인 순간에 발휘된다. 수공업의 정신으로 세공된 세트와 소품, 그리고 극히 단순한 대사에도 고전의 품위를 불어넣는 탁월한 조연 앙상블이야말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술이다. 그중에서도 표창감은 자학 개그로 웃음을 자아내는 CG 캐릭터 도비와 셜리 헨더슨이 서른 넘긴 나이를 믿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는 화장실 유령 모닝 머틀, 그리고 “자 모두 내가 보이나요 모두들 내가 들리나요”를 줄곧 외치는 자아도취증 환자 길데로이 록허트 교수. 10분가량의 엔딩 크레딧을 견딘 참을성 있는 관객은 록허트 역 케네스 브래너의 짤막한 추신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다.

그들의 캐릭터만큼이나 신세계의 경이에 어리둥절한 것처럼 보였던 세 어린 주연들은 부쩍 유연해졌다. 또한 원작과 배우, 프로덕션디자이너의 작가적 권한(authorship)을 논할 만한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의 기량이 가장 빛나는 것도 어린 배우들의 신뢰를 얻고 재능을 끌어낸 대목이다. 특히 거목 조연들의 그늘 아래에서 믿음직하게 성장한 것은 리더 대니얼 래드클리프. 용을 무찌른 신화 속 지그프리드처럼 장검을 들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대사를 말하는 열두살의 해리는, 10대 소년의 무구함과 위인의 징후를 위화감 없이 표현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마법 일기장의 주인 톰리들은 여러 면에서 해리와 닮았다. ♣ 호그와트로 가는 열차를 놓친 해리와 론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는 소동을 겪는다. ♣ 2편에서 해리는 글자 그대로 앙숙 말포이와 결투한다.

여전히 <…비밀의 방>을 다스리는 것은 호그와트의 회랑을 떠도는 원작자 J.K. 롤링이다. 크리스 콜럼버스와 제작진은 책 갈피갈피를 존경할 만한 성실성과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재현하는 비난할 수 없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행이 아니라 행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재현하는 과제로 귀결된다. 불완전함과 악함의 차이, 현실과 마법의 혈연, 빛과 어둠의 동행을 말하는 판타지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서는 때로는 조금 특별한 창이 필요하다. 헤르미온느의 신통한 주문이 필요한 것은 3편의 묵직한 메가폰을 받아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만이 아니다. 어린 배우들은 장면마다 얼굴선이 변할 만큼 겁나게 자라고, 잔인한 마니아들의 감시 아래 고스란히 재현해야 할 원작의 부피는 갈수록 커지고 지금쯤 프랜차이즈의 불을 다시 지펴줘야 할 J.K. 롤링의 다섯 번째 책은 지체되고 있다. 위태로운 성년의 문턱까지 프랜차이즈를 가져다놓고 비탈 위의 눈덩이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워너브러더스와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만에게 훗날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사춘기의 그리운 다락방쯤으로 회고될지도 모르겠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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