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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신문 제 4호 (1908~1912) <3>
2002-12-18

영화사신문

스타시스템의 탄생

배우, 은막 밖으로

1910년. 세인트루이스 역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녀’를, 그녀의 ‘살아 있음’을 어깨 너머라도 보기 위해 쏟아져 들어온 세인트루이스의 시민들이다. 약속된 시간에 그녀는 나타났고 시민들은 열광했다. 이제 영화에서도 ‘스타덤’이라 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바로 전에 ‘바이오그라프 걸’이라고 불렸던 독립영화사 IMP의 여배우 플로렌스 로렌스다.

그날 이벤트는 IMP의 사장 칼 래믈이 지난해 바이오그라프사에서 스카우트한 플로렌스 로렌스를 ‘스타’로 만들기 위한 전략전술의 하나로 준비됐다. 곧 칼 래믈은 그녀를 스카우트한 뒤, 그녀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차사고로 죽었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고나서 그는 업계지 <모션 픽처 월드>에 ‘거짓을 벗긴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 그녀의 죽음은 사실무근이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녀가 최근작의 개봉에 맞춰 세인트루이스에 나타날 것이라는 광고를 냈다. 이 광고에서 래믈은 그녀의 실제 이름이 플로렌스 로렌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전에 그녀는 그저 ‘바이오그라프 걸’로만 알려져 있었다.

칼 래믈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 이벤트를 계기로 플로렌스 로렌스는 전 미국인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같은 인기가 영화의 흥행으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이로써 칼 래믈은 배우들의 전략적 활용에서는 MPPC 소속 영화사들보다 한수 위임을 증명했다. 사실 MPPC의 제작자들은 여전히 배우들(과 감독들)의 실명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그렇게 해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배우들이 그만큼 높은 출연료를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독립영화제작자 칼 래믈은 그러한 관례를 깨고 높은 출연료로 인기 배우들을 스카우트하고 그들의 실명을 영화홍보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 영화사신문이 만난 사람 ■

일본 요시자와상점 대표 가와우라 겐이치(河浦 謙一)

“관객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1912년 9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대형영화사 ‘일본활동사진주식회사’(日本活動寫眞株式會社)가 세워졌다. 약칭으로 ‘닛카쓰’(日活)로 불리는 이 영화사는 M·파테상회, 요코다상회, 요시자와상점, 후쿠호오도오, 이 네 영화사의 합병회사다. 닛카쓰의 출범에 즈음해 참여 회사 가운데 하나인 요시자와상점의 대표 가와우라 겐이치를 만났다. 요시자와상점은 1899년 미국영화 <미국 스페인전>을 수입, 상영한 이래 일본에서 최초로 영화전문관과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등 활발하게 사업을 확장해왔다.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일본에 있는 극장은 전부 해도 100개가 안 된다. 그걸 놓고 네개의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그래서는 누구도 이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힘을 모으기로 했다. 네 회사가 협상과정에서 많이 옥신각신한 끝에 합병에 합의했다.

스튜디오 운영은.

스튜디오는 두곳에 두기로 했다. 원래 요코다상회가 소유했던 교토의 스튜디오는 그대로 두고 도쿄 시내에 닛카쓰 무코오지마 촬영소는 새로 만들었다. 교토에서는 오로지 시대극만 만든다. 도쿄에서는 현대극만 만들고. 각 스튜디오에서 똑같이 한달에 네편을 만들어 시대극과 현대극을 한편씩 짝지어 개봉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물론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 흥행시키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좋은 영화, 고급 영화에 대한 인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 1903년 일본인들은 평균적으로 일년에 2.33회 저급 대중관에 가고, 1.35회 영화관에 갔다. 하지만 올해 통계를 보면 저급 대중관에 가는 횟수는 1.53회로 줄고, 영화관은 5.50회로 늘었다. 그만큼 관객의 눈높이도 높아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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