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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장이모의 <영웅> 시사기 [4] - 양조위·장만옥 인터뷰
박은영 2002-12-23

"아시아의 무협엔 철학이 있다"

파검 역 배우 양조위 인터뷰

글을 쓰듯 검을 휘두르고, 검을 휘두르듯 글을 쓰는 자객 파검. <영웅>에서 양조위가 연기한 파검은 문(文)을 통해 무(武)의 새로운 경지에 다다른 평화주의자다. 스스로 무술 연기에 소질이 없다고 고백하는 양조위는 파검의 극심한 갈등과 고통을 체현해내는 것이 힘들었던 듯 촬영 당시를 회상하면서 언뜻언뜻 얼굴에 그늘을 내리기도 했다. 양조위는 스타 연하지 않는 친근하고 편안한 인상 그대로,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오픈 마인드’의 자세를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장이모 감독이 홍콩에 직접 찾아와서 캐스팅의 뜻을 밝혔는데, 무엇보다 그를 존경하는 마음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외국 스탭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시나리오의 세 가지 에피소드별로 다른 표현방식으로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아시아의 무협이 서양에서 어필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아시아의 무협이 서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아시아의 무협은 서양의 액션과 달리 철학과 역사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동사서독>의 무술감독 홍금보와 <영웅>의 무술감독 정소동을 비교해본다면.

=정소동은 춤을 추는 것처럼 부드럽게 표현한다. 미학적 무술이라고 할까. 무술에 문외한인 여배우들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 반면 홍금보의 액션은 딱딱하고 복잡해서, 실제 무술에 더 가까운 편이다.

-당신의 캐릭터인 파검은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저항을 포기하려 한다. 그 뜻에 동의하는가. 패배주의적이고 무기력한 결정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모든 걸 포용하는 인물이다. 작은 걸 희생하며, 더 큰 것을 포용하는 것이 영웅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파검은 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캐릭터다. 진시황을 죽이지 않는 것은 애인과 동지들을 배반하는 일이고, 진시황을 죽이는 것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어서, 분단국 간의 참혹한 분쟁을 부르는 일이다. 그는 이런 갈등을 다른 협객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심리학자가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자유자재로 읽어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적인 고통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이모 감독과의 작업은 처음인데, 어떻게 느꼈나.

=북방인의 기질을 타고난 분이다. 진솔하고 직설적이고 대범하다. 에피소드별 색채를 단색으로 표현해낸 것도 그의 그런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주로 허무주의자를 연기해왔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글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캐릭터가 많이 들어온다. 내가 허무와 고뇌에 찬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는가보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시도다"

비설 역 배우 장만옥 인터뷰

일명 번개머리라 부르는 짧은 펑크머리에 니트와 청바지를 받쳐입은 장만옥은 담배 연기와 함께 기자단을 맞았다. 비련의 여주인공 이미지가 싫다면서, 만다린어에 익숙지 않다면서, 검을 쓰는 무술연기가 무섭다면서, <영웅>의 비설을 받아들인 이유는 장이모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 때문. 역사가 폭군으로 단정한 진시황에 대해 “지도자라면 그 정도의 영향력은 있어야 한다”고 손을 들어줄 만큼 통이 큰 여인이기도 했다.

-에피소드별로 변화가 많았다. 그런 차이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한 이야기에서 세 가지 에피소드가 갈라져 나오는 구성이라서, 조금 힘들었다. 각기 너무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핵심을 비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디테일의 차이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적색 에피소드에선 강렬하고 당당한 이미지를 담아보려 했고, 청색에선 낭만적이고 순애보적인 이미지에 현모양처의 분위기를 내보려 했고, 백색에선 나약한 여인이 아닌 대범한 협객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

-액션신을 소화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다면.

=해발 3000m 고지대나 사막에서 촬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중 사막에서의 촬영은 모래 바람 때문에 집중된 연기를 하기가 힘들었다. 와이어 액션이 어렵지 않았냐고들 물어오는데, 나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게 재밌었다. 정말 힘든 건 검을 쓰는 연기였는데 여자로서 검을 부딪치고 휘두르는 것이 좀 무서웠다.

-<화양연화>에 이어 또 다시 비극적 멜로의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역할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쪽으로 캐릭터가 굳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그런데 장이모 감독이 <화양연화>를 좋게 봤다면서 출연을 권해 왔기 때문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꼭 한번 같이 일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겪은 장이모 감독은 어떤 사람이던가.

=처음 사진을 통해 본 장이모 감독은 무섭고 또 심각한 이미지였다. 막상 촬영장에서 만나보니, 유머 감각도 풍부하고 배우들을 자상하게 챙겨주더라. 물론 영화적 고집은 무척 센 편이고, ‘한다면 한다’는 스타일이다.

-배우로서 이 영화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관객이 좋아해주길 바란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지만,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좀더 세심하게 읽을거리가 많은 영화다. 서예나 무술처럼 동양의 고유한 문화, 그 아름다움을 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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