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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2001-04-24

멕시칸

Story 하는 일마다 망치기만 하는 어리숙한 제리(브래드 피트)는 그를 너무나 사랑하는 샘(줄리아 로버츠)과 5년째 동거중이다. 하지만 갱단에 발목잡힌 뒤 정말 지긋지긋한 생활을 해온 둘은 이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라스베이거스로 떠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마음 약한 제리는 갱들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머나먼 멕시코까지 가서 전설의 총 ‘멕시칸’을 찾는 위험천만한 일을 맡게 된다. 이에 화가 난 샘은 제리와 상관없이 라스베이거스로 갈 것을 선언하고 이윽고 둘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Review두 사람이 서로 미치게 사랑하지만, 같이 어울릴 수 없다면 두 사람은 언제 관계를 끝장내야 될까? 이 질문에 대해서 ‘절대 안 된다’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지금 멈출 수 없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멕시칸>은 바로 브레이크가 터져버린 것처럼 나아가는 과열 과속의 연인에 관한 로맨틱 코미디 액션 서부극 로드무비이다.

제리와 샘은 한시도 서로를 잊은 적이 없지만 만날 때마다 고양이와 개처럼 토닥거린다.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나왔으니, 관객으로서는 두 사람이 두 시간 내내 정원손질만 해도 기꺼이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아쉽게도 <멕시칸>에서 줄리아와 브래드는 거의 화학작용이 없다. 이제까지 리처드 기어니 닉 놀테 같은 잘 나가는 중고 아저씨들이나 휴 그랜트류의 평범한 남자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던 줄리아. 그런 그녀에게 연하의 브래드는 영 버거웠던 것일까? 오히려 줄리아 로버츠와 기가 막힌 연기 앙상블을 벌이는 쪽은 역시 중년의 킬러 제임스 갠돌피니다.

망가진 양아치로 이미 <스내치>에서 몸을 버린 브래드 피트는 <멕시칸>에서 아예 우물쭈물한 저능아 자체로 영화주변을 빙빙 돈다. 한마디로 장진구적이라는 말이 어떤 뉘앙스인지 아시는 분은 <멕시칸>을 보면 제리스러움이 어떤 말인지 단번에 알게 되리라. 제리는 두목 차를 들이받아 차 속의 시체를 들통나게 하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여권을 잃어버린다.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고장난 신호등처럼 제리는 아연실색의 실수연발로 관객의 웃음을 담보하는 것이다.

사실 되는 일 없는 어리숙한 캐릭터로 할리우드와 승부했던 일은 감독 고어 버빈스키에게 낯선 일만은 아니었다. 데뷔작 <마우스 헌트>에서 쥐 한 마리 잡는 일에 온 정력을 바치고도 모자랐는지 이번에는 총 한 자루를 위해 온 멕시코 땅을 헤맨다. 간단한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가는 버빈스키의 재주는 때론 막다른 상황에서도 웃음을 나오게 하는 재치와 반전이 돋보이지만, <멕시칸>에서는 장르와 주제가 이리저리 이합집산되어 중구난방으로 어지럽다.

이 가운데 각기 다른 전설로 구전되어 오는 저주의 총 멕시칸의 진실은 영화 <멕시칸>의 가장 중요한 핵심. 총을 만든 장인의 딸과 그녀를 소유하려는 귀족의 아들 그리고 소녀를 사랑하는 견습생의 전설은 총알이 뒤로 발사가 되는 것인지 앞으로 발사가 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든다. 커다란 심장이 그려진 멕시칸은 바로 사람들 마음속에 누구나 한 자루쯤은 품어볼 만한 인생의 의미는 아니었는지. 당연히 악당들은 총의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지만, 결국 총을 소유할 수 있는 자는 저주의 전설을 뚫고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멕시칸>이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하는 총에 관한 영화일까? <멕시칸>에는 은폐된 호모의 사랑과 갱과 인질의 우정 그리고 뒤바뀐 정체성이 주는 반전의 이야기도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무쌍한 <멕시칸>의 이야기에 2시간 넘어 몸을 싣게 되면, 결국 제리가 헤매는 멕시코 사막이나 샘이 가자고 우기는 라스베이거스는 여러모로 대조를 이루는 지정학적으로 유의미한 장소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둘 모두 뿌연 세피아 톤으로 스크린을 부유하지만, 샘의 라스베이거스가 허무맹랑한 야심과 조야한 자본주의의 신기루라면, 제리의 멕시코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숙명적인 황량함이 깃들어 있다. 마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줄리아 로버츠가 그동안 애써 비주류의 영화만 골라 출연하던 브래드 피트의 세계로 훌쩍 넘어가버리듯 말이다.

그러나 역시 줄리아는 할리우드의 여인. <메리 라일리>로 안개 낀 영국에서 특유의 빅 스마일을 잃어버렸듯, 줄리아는 다시 한번 황량한 멕시코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니 아디오스 아미고. 과잉 내레이션의 지뢰밭에서 교통사고를 내버린 <멕시칸>. 영화는 스타에 의한 스타파워에 대한 스타일을 앞세운 흥행 전략이 박스오피스에 얼마나 큰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흔한 예증에서 급정거하고 만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킬러, 수줍게 섬세하게 I 제임스 갠돌피니

진 해크먼을 연상시키는 감자코에 빡빡 밀어버린 앞이마, 짙은 눈썹을 한번 움찔거리면 산천초목도 벌벌 떨게 만든다. 겉으로는 면도날처럼 차갑게 살인지령을 완수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감성적인 인간의 피가 흐르는 킬러. <멕시칸>의 르로이는 바로 HBO의 인기시리즈물 <소프라노스>의 갱 두목 제임스 갠돌피니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멕시칸>이 끝나자 나는 갠돌피니교의 신도가 되었다”고 고백할 만큼, 영화 <멕시칸>에서 갠돌피니는 자신의 연기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숨겨진 동성애 성향 때문에 수줍게 줄리아 로버츠에게 인생상담을 하는가 하면, 동성애인의 죽음에 피도 눈물도 없이 복수를 결행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갠돌피니는 1962년 미국 뉴저지 웨스트우드에서 태어났다. 뉴욕에서 연기를 시작한 연극배우 출신으로 1992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이후 토니 스콧의 <트루 로맨스>와 진 해크먼의 <크림슨 타이드>를 거쳐 <소프라노스>의 갱 두목 토니 소프라노 역할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휩쓸게 된다. 여가시간에는 색소폰과 트럼펫을 불고 <소프라노스>에 나오는 말쑥한 차림의 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나이. 그는 늘 취약하고 혼란스런 인간을 연기하고 싶다며, “맡은 역할이 섬세할수록 거기에 더 혼란스런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현재는 2년치 개런티가 1천만달러에 이를 정도로 전 미국을 휩쓸고 있는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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