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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매력에 새로움을,<보물성>
2003-01-07

■ Story

사람과 사이보그, 동물과 괴물들이 다같이 의사소통을 하며 사는 어느 미래의 우주시대. <보물섬> 동화를 좋아하던 소년 제임스 호킨스(오스틴 메이저스(아역)/ 조셉 고든 레비트)는 자라서 태양열보드 타기를 즐기는 반항아가 된다. 어릴 적 아버지가 떠나버린 뒤 여인숙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그의 손에, 어느 날 보물성 지도를 빛으로 뿜어내는 신비의 구슬공이 들어온다. 그러는 와중에 구슬공을 얻으려 하는 해적에 의해 어머니의 여인숙이 불타 없어지자, 제임스는 여관을 재건축할 비용을 얻기 위해 과학자인 닥터 도플러(데이비드 하이드 피어스)와 함께 플린트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 제임스는 보물성을 향해 항해하는 우주선에서 아멜리아 선장(에마 톰슨)과 사이보그 존 실버(브라이언 머레이), 변형물체 ‘모프’를 만나고, 항해 도중 로봇 벤(마틴 쇼트)과 친구가 된다.

■ Review

‘보물성’이라는 제목이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 이유는, ‘보물섬’이라는 제목이 익기 때문일 것이다. 드넓은 바다 어딘가에 있다는 보물섬을 찾아 항해하는 소년의 이야기 ‘보물섬’을,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보물의 행성을 찾아 우주를 누비는 청소년의 이야기로 바꾼 것이 디즈니의 <보물성>이다. 배경과 시대,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이 있는 장소의 성격이 달라짐으로써 이야기는 새로운 분위기 속에 놓인다. ‘이시리움’(Etherium: <보물성> 팀이 만들어낸 우주의 명칭)이라는 우주의 바다에 배가 출항하자마자 선장은 공중으로 떠오르는 선원들을 붙잡아놓기 위해 ‘인공중력 버튼을 눌러라’라는 명령을 내리고, 제임스 일행은 보물을 얻기 위해서 섬에 닻을 내리는 게 아니라 행성의 내부로 들어간다. 보물성 지도는, 뱃길 지도가 아니라 우주 지도이고, 애꾸눈 실버는 ‘사이보그’ 해적이 되었다.

<보물성>은 그러나, 새로움을 가미하는 것만큼이나 원래의 <보물섬> 이야기가 갖고 있는 매력을 잃지 않는 것에 신경을 쓰고 만든 작품이다. 우주선의 모양은 유선형의 금속물체가 아니라 갑판과 돛으로 이루어진 나무배이고, 유일하게 우주복을 마련해 입고 나오는 인물인 닥터 도플러의 우주복은 ‘첨단’의 느낌보다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 로봇을 연상시키는 ‘고철’의 느낌을 준다. 그것은 제임스가 항해 도중 만나 친구가 되는 로봇 벤도 마찬가지여서, ‘100년 전부터 혼자 지내 맛이 간’ 로봇 벤이 자신의 메모리 장치를 회복해 그 기능을 발휘하는 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맛이 간’ 로봇 상태로 주인공 제임스와 마음을 나눈다.

<보물성>에서 중요한 것은, 박진감 있는 액션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미래적 이미지도 아닌, 따뜻한 감성과 고난극복의 성장담이다. 착하기만 하던 어린 시절이 지난 뒤, 소년원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의 문제 청소년이 된 주인공 제임스 호킨스의 ‘다시 착해지기’ 위한 통과의례가, <보물성> 이야기의 큰 흐름이다. 21세기의 아이들이 19세기에 원작이 나온 이 이야기에 여전히 매혹된다면, 이는 바로 그 안에 아주 기본적인 성장 스토리가 꿈틀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디즈니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테마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차례로)♣ 애꾸눈 실버는 제임스에게 처음에는 아버지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보물을 찾기 위한 여행은 제임스에게 `다시 착해지기` 위한 통과의례의 구실을 한다.♣ 돛을 달고 보물성을 향해 가는 제임스의 우주선. 모양만은 바다위를 항해하는 나무배 그대로다♣ 우주선을 찾아 떠나기 전 태양열 보드를 타는 제임스의 모습.

<아틀란티스>에 이어 <보물성>이 미국에서 이미 개봉해 흥행에 실패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아성에 타격을 입히고 있기는 하지만, <보물성>은 <아틀란티스>와는 다른 방향을 조준하고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아틀란티스>가 딱딱한 그림체의 캐릭터로 거친 어드벤처를 시도했던 데 반해, <보물성>은 디즈니의 주특기인 동물 캐릭터를 십분 등장시키고(주인공 모자와 박사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동물이고 소수가 사이보그다) 모험을 벌이되 그 동기가 될 만한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열어 보인다. 보물을 한가득 얻어오는 것이 아니라, 말썽 많은 청소년 제임스가 다시 ‘사회’에서 환영받으며 어머니의 착한 외아들로 ‘컴백홈’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해피엔드인 것도, 이 영화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보물성>은 월트 디즈니가 17년 전부터 준비해온 작품이다. <인어공주>와 <알라딘>을 만들었던 존 머스커와 론 클레멘츠가 17년 전 써놓았으나 당시의 애니메이션 기술로는 표현이 힘들어 미루어놓았던 시나리오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보물성>에서 디즈니 제작진들은 이미 <아틀란티스>에서 시도한 바 있는 ‘딥 캔버스 기법’(2D 캐릭터와 3D 배경을 합성하는 기법)을 좀더 유연하게 사용했고, 이를 가리켜 ‘5D’라 칭하고 있다. 그림은 황색과 홍색을 주조로 하는 따뜻한 느낌의 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회색이나 청색 조의 차가운 색들이 보조적으로 사용되었다. 캐릭터는 대부분 부드러운 선으로 마감되어 있어, 행성 내부의 복잡한 기계 장치가 오히려 눈에 띈다.

<보물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이 점점 클로즈업되어 우주 정거장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일 것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서정과 SF적 상상력이 한숏 속에 녹아나는 장면. ‘초승달 우주 정거장’이라는 미래적 상상력과 우주선들이 ‘아직도’ 100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고풍스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복고풍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이 장면은, <보물성>이 무엇을 꿈꾸는 애니메이션인지를 유려하게 보여준다.최수임 sooee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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