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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 지구로의 여행
2003-01-09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 Story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병원, 법정, 교회 등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진실이니, 모두가 내 진실에 빠져 죽을 것이다”라며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고 황당하게 만드는 이 남자는, 그러나 곧 자신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이제 그의 진실은 아주 다른 방식의 역설로 다시 관객에게 돌아온다.

■ Review

그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영화 내내 남자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진실이다”라고 말할 뿐 진실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위로 이따금씩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진실을 주장하는 그의 모습은 가끔씩 푸른 빛깔의 낯선 시선에서 비쳐진다. 그리고 남자가 이끌어가던 알 수 없는 이미지는 결국 물고문을 받는 그가 푸른빛의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 다음 엄청난 반전이 일어난다.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진실’과 어딘가에 절대불변으로 존재하는 ‘진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영화는 진리와 진실에 대해 설파하고 주장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아주 똑똑하고도 독창적인 은유로 표현해내고 있다. 진실은 많은 경우 전진하지 못한다. 욕조에 머리를 처박은 채 투명한 물 속에서 불투명하게 울리던 남자의 음성처럼, 진실은 많은 경우 감추어지고 설득당하며 자기 자신에게 고통의 메아리로 웅웅거리며 돌아올 뿐이다.

지구로의 여행

■ Story

어릴 적 선생님에게 상으로 받은 작은 지구본을 보물처럼 간직하는 재림은 지구본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옆집에 사는 묘한 분위기의 영아 아가씨와 조금씩 감정을 나누게 되는 재림에게는 하루에 한번 자전하는 지구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진다.

■ Review

재림이 키우는 고양이의 내레이션이 깔리는 이 영화는 사실 고양이의 시선이랄지 역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예쁜 얼룩고양이는 이 영화에서 많은 장치들이 그렇듯이 하나의 이미지로만 주어진다.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 물레를 돌리고 병든 할머니를 보살피며 목에 있는 상처를 감춘 채 살아가는 옆집 아가씨 영아, 손에 잡힐 듯이 크게 떠 있는 달을 포함해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간이나 의상, 소품 하나하나가 다 이 영화가 판타지임을 강조한다.

확실히 그런 세심한 장치들은 영화의 화면을 효과적으로 꾸며준다. 현실의 공간 같지 않은 세트와 배경은 콘트라스트가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화면과 입체적인 앵글들 속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정말 “영화적인” 것으로 만들어낸다. 따라서 주인공들에게 일어나는 다소 전형적이면서도 마술 같은 일들, 그다지 큰 상징은 없어 보이는 빛나는 지구본, 마치 동화의 마지막처럼 논리적인 이해가 요구되지 않는 결말 등은 오히려 화면과 분위기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나고, 이 영화를 단편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사랑스럽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만들었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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