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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의 ‘merry christmas’ 콘서트
2003-01-11

유년과 생애

일할 때는 논리가 너무 짱짱-명료하고 놀 때는 율동이 너무 화끈한 강금실(변호사)이 간만에 전화를 하더니 “형, 크리스마스날 약속 있어” 하고, 그 말이 너무 짱짱-명료해서 내가 그냥 멍하니 있자 강금실은 곧바로 “전인권 콘서트 안 갈래요” 하는데, 벌써 율동쪽이라,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김진석이도 오고(그는 철학‘교수’와 철학‘자’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펼치고 심화하는, 한국 철학계에 희귀한 자다. 마누라가 발레리나라서, 딴따라 기질도 충분하다), 이현도 온다 했어요(그녀는 이탈리아에서 명성을 굳혔지만 한국의 열악한 미술 환경을 무던히도 잘 참는, 그래서 그림이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드는, 역시 한국 화단에 희귀한 화가다). 뭐 잘됐네. 오랜만에 잘 놀겠네….

내심은 얼떨결에 그랬지만, 전화를 끊고보니 크리스마스 행사 외출은 어렸을 적, 떡과 사탕을 얻어먹으러 교회에 나간 이후 처음이라 좀 황량했다. 더군다나, 밤도 아니고 대낮 말짱한 4시에, 공연이라…. 아무리 내가 전인권을 좋아한다지만…. 천식이 심해서 나는 공연 기획-연출은 해도 관람은 좀체 안 하는 편이다.

거리는 한산했지만 10여년 전 노찾사 공연 구경왔을 때보다 객석이 반으로 준 세실극장은 좌석이 촘촘하고 청중이 ‘만땅꾸’였다. 게다가, 팜스터(팸플릿+포스터)에는 ‘불후의 명곡’ 12곡과 ‘새 노래’ 15곡이 적시되어 있으니 도대체 몇 시간을 공연하겠다는 건지, 나는 덜컥 겁까지 났다. 안 되겠군. 공연이 시작되면 차라리 서서보다가 들락거리며 신선한 공기 좀 마시는 게 낫겠군….

하지만 모든 것은 기우로 끝났다. 노래 하나를 부르며 모종의, 가창의 벽에 도전하고 그 벽을 깨부수고, 다시 벽에 도전하고, 깨부순다. 그것은 노래를 노래의 생애로 만든다. 그렇다. 그의 노래 한곡은 생애 한곡이었다. 그리고, 이상도 하지. 27곡을 들었으니 27개의 생애를 산 셈인데, 지루하기는커녕 갈수록 흥미로워지다니….

젊은 세대는 폭발적인 율동에 빠져들고(과감하게 맨 앞 보조의자석을 잡은 강금실-김진석도 그 점에서는 젊은 세대다), 늙은 세대가 분명한 나는 율동 속으로 곰곰 생각, 생애의 길을 낸다. 낯익어서 감동적인 ‘불후의 명곡’의 선율과 율동이 유년의 교회 떡-사탕에서 지금에 이르는 나의 생애를 폭발적으로, 물컹 적시고, 빨랫줄처럼 흔들었다.

신곡들은 다소 여려졌지만, 그럼그럼. 매일 폭발적일 수는 없다는 안도처럼, 여린 만큼 아름다움의 나이를 먹었다. 앞으로의 내 생애가 벌써 감동적일 것처럼.

불러준 사람, 공연 뒤 같이 술마셔준 사람들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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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