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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날까 꺾일까
2003-01-20

친애하는 Y가 <협녀> 비디오를 빌려놨다고 했다. Y는 <요재지이> 완역본을 사왔는데 1권의 목차에서 ‘섭소천-천녀유혼’과 ‘협녀’를 발견해서 덥석 <요재지이>를 샀고 내친 김에 비디오숍에서 <협녀>를 빌린 것이다. 우연이랄까 나는 <금병매> 완역본을 읽고 있던 차였다. 두 책은 중국의 8대 기서에 속한다. 8대 기서란 명대의 4대 기서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에, 청대의 4대 기서 <요재지이> <유림외사> <홍루몽> <금고기관>을 합쳐 부르는 것이다.

내가 <금병매>를 읽는 것은 난도질된 김기영 감독의 <반금련>을 어떻게든 재조립해보기 위해서였다. 김기영 감독의 <반금련>은 <금병매>의 주인공 서문탁의 여러 아내들 중 하나인 반금련의 이름을 딴 것이다. <금병매>는 제목 자체가 이야기 속 여주인공들 중 세명의 이름을 조합한 것인데 반금련의 ‘금’자와 이병아의 ‘병’자, 춘매의 ‘매’자를 조합해서 ‘금병매’가 된다. 김기영 감독은 <금병매>를 반금련으로 재해석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반금련>은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았다. 출시되었다 해도 이야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게 난도질당해서 이를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금련>은 수년간 검열에 묶여 있다가 제작자가 멋대로 편집해서 개봉한 지 얼마 안 돼 바로 막을 내린 불운한 케이스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반금련>은 김기영 감독 붐이 일었던 수년 전 케이블TV에서 방영되었을 때 이를 녹화해둔 어떤 이에게서 운좋게 얻은 복사본이다. 우리는 <요재지이>와 <금병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Y가 <요재지이>를 읽으면서 호금전의 상상력을 더듬는 동안 나는 김기영의 상상력이 어떻게 칼부림당했나를 더듬어야 하니 말이다. 이지윤/ 비디오 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