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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 음악감독 이하늘
2003-01-29

아이들 목소리,피자로 얻은 거죠

지금 내 모습 너무나 초라해 난 한번도 단 한번도 넘어질 거라 쓰러질 거라 생각지 않았기에 지금 내 모습 더 초라하게 느껴지네 시간에 묻혀 벌써 나를 잊어버린 사람들 그 속에 나 자신감마저 잃어 이젠 내가 싫어졌는지 아님 공백기간이 너무 길어서인지….(DJ. DOC 5집 중 인트로 <와신상담>)

지난해 7월 인천시 계양구에 문을 연 DJ. DOC의 작업실엔 탁구대가 제일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여 있다. 탁구를 좀 칠 줄 아는 이하늘이 후배와 동료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주머니를 턴 거다. 탁구를 좀 칠 줄 아는 이하늘이 기자와 인터뷰를 끝내고 건넨 마지막 인사말도 “탁구 한판 하고 갈래요”였다. 거의 3년 만에 서본다는 카메라 앞에서 어찌나 오랜만에 사진 찍는 티를 내는지 사진기자가 좀 웃어보라고 하자 “전 웃겨야 웃어요” 한마디. 불편한 티를 다 내더니 어느새 <품행제로> O.S.T 작업에 참여한 멤버들을 주저리주저리 모아 같이 사진을 찍자고 법석을 부린다. 트레이드마크인 노란 머리를 짧게 깎아 까만 밤송이가 돼버린 이하늘의 이마를 보며 후배들이 “형, 기름 좀 닦아야겠어요” 면박을 주자, “짜샤, 니들이 괜히 더 폼잡지 마” 하고 응수하다가 갑자기 전화기를 꺼내 꾹꾹 눌러댄다. “아… 집에서 장조림하다 나왔거든요. 마무리를 못 짓고 나와서 걱정이 되네.” 장조림에 넣을 메추리알을 4판이나 까넣었다는 그의 손은 상처투성이다. 11명이나 되는 후배들을 데리고 사는 그는, 짭조름한 간장조림, 아줌마 냄새를 풀풀 풍기는 서른의 노총각 래퍼다.

<품행제로> 시나리오를 받고서 선뜻 음악작업에 동의한 것은 상당히 돈 되는 아르바이트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6집 작업이 선뜻 끝날 것 같지 않은데다, ‘싸랑하는’ 후배들 입에 들어갈 밥을 생각하며 척 일을 맡았는데, 아 그게 쉽지 않은 길이었다. 멜로면 멜로, 액션이면 액션이어야지 음악 만들기도 쉬울 것 같은데, 무슨 영화가 분위기 좀 띄울 만하면 금세 러브러브한 장면이 나오질 않나, 멜랑콜리하게 분위기 깔면 쌈치기 장면이 나오질 않나 아주 골탕을 먹었다. 게다가 이놈의 영화판은 음악을 만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스무날 남짓한 시간만 달랑 줘버리니 감 잡는 데 열흘, 만든 거 뒤집는 데 다시 열흘 걸렸다. 엔딩 타이틀이 막판에 바뀌는 바람에 오프닝곡에다 하룻만에 떠올린 가사를 붙여 <즐거운 생활>을 완성했는데, 곡 중에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 교회 유치원 아이들 데려다 피자 주며 달래고 얼러 얻은 수확이다. 대단하다, 천재 이하늘!!

2001년, 5집을 끝내고 새로운 소속사인 쇼글로브와 계약을 맺고 아직까지 별다른 활동이 없던 이하늘은 올해 봄에 나올 6집 작곡에 매진하는 중이다. 스스로도 어떤 내용이 담길지 모르겠다는 6집이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 보인다. DJ. DOC 그들이 아파하고, 즐거워하고, 힘들어한, 그들이 직접 겪은 삶의 흔적이라는 것. 거짓말 못하고, 상상력도 부족하고, 연출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 이하늘에게서 나올 건 자신의 경험, 그리고 그 안에 숨쉬는 작은 진실뿐.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

프로필

→ 1974년생·1994년 데뷔→ DJ. DOC 1∼5집 활동→ 현재 6집 준비 중→ 대표곡 : <슈퍼맨의 비애> <머피의 법칙> <겨울이야기>→ <여름이야기> 등→ 영화 <품행제로>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