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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다운 해피엔딩,<투 윅스 노티스>

■ Story

환경운동가이자 변호사인 루시 켈슨(샌드라 불럭)은 유서 깊은 구민회관을 철거하려는 부동산업체 사장 조지 웨이드(휴 그랜트)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간다. 고문변호사를 맡아주면 구민회관을 유지시키겠다는 웨이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켈슨은 이내 자립심 없고 돈만 많은 웨이드의 개인 비서가 되다시피 한다. 2주 뒤에 사직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후임을 구하는데, 예쁜 변호사를 즉석 채용해서 파티에 데리고 다니는 웨이드에게 은근히 질투를 느낀다.

■ Review

장르란 매일 차리는 밥상과도 같다. 익숙한 편안함을 기대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설렘이라곤 도무지 없는 것이다. 샌드라 불럭과 휴 그랜트가 나오는 로맨틱코미디라고 하면, 점심식사용 치즈와 샐러드처럼 선명하고 단출하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양상추는 얼마나 신선하며 소스는 맛이 있는지 정도일 것이다.

<투 윅스 노티스>의 주재료는 능숙한 로맨틱코미디가 늘 그렇듯이 깔끔하게 정리된 두명의 캐릭터다. 간단히 말하자면 똑똑하지만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 피곤한 여자와 돈많은 바람둥이 마마보이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다. 길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나고 자라 하버드 법대를 나온 루시 켈슨은 진보적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지역운동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실천적인 활동가이다. 법대 교수인 어머니와 변호사 아버지의 농담에 따르면 켈슨은 다섯살 때부터 백악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러므로 출세를 향한 경력 관리 대신 무료 변론과 항의 시위를 더 중요시하고, 외모 관리나 결혼에 대한 관심 대신 그린피스 회원으로 먼 바다를 떠도는 남자친구와의 전화통화를 연애라고 생각하며 산다. 무언가에 남다르게 집중하는 사람 특유의 신경증적인 강박증세를 켈슨 또한 가지고 있으니 바로 식탐이다.

조지 웨이드는 부르주아 집안의 막내아들이라는 전형적인 설정에 충실하다. 매력적인 외모에 잘 다듬어진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사업에서는 얼굴 마담 역할에 그칠 뿐 집안의 배후조종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다.

로맨틱코미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는 미혼의 남녀 캐릭터를 설정해서 작가의 상상세계 속에 풀어놓고 그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도록 기다리면 된다. 각본 겸 감독을 맡은 마크 로렌스의 머릿속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낸 켈슨과 웨이드는 샌드라 불럭과 휴 그랜트라는 숙련된 배우의 육체를 입고 뉴욕을 종횡무진한다.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일으키는 사랑의 화학작용을 마치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즐기는 역할이 맡겨진다. 2주간의 사직 예고 기간을 뜻하는 제목(Two Weeks Notice)에서 알 수 있듯이, 떠나도록 예정된 두 사람은 스스로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에 당황하면서 상대의 빈자리를 새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거리에서의 키스로 끝날까 아니면 결혼식 장면일까? 아하, <투 윅스 노티스>다운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썼군. 아! 장르의 전통이란 얼마나 유용하고 매력적인지. 혹은 시큰둥한지.

뉴욕은 미국이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뉴요커영화는 할리우드영화와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다채로운 교양에 바탕을 둔 수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지만 심각하게 살 이유가 없는 데서 오는 가벼운 냉소주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예리한 감수성과 언어화 능력 같은 것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섹스 & 시티>라는 TV시리즈의 성공은 이같은 특징들이 상업적으로 안전한 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투 윅스 노티스>에서도 유쾌한 냉소주의가 자주 발견된다. 웨이드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웨이드 그룹의 대외적인 활동을 도맡아 하지만 실권을 쥔 사람은 형 하워드다. 그는 늘 러닝머신에 올라 뛰지만 육체의 매력과는 거리가 먼 애처로운 부르주아 남자의 모습으로만 나온다.

근사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파티에서 웨이드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 켈슨이 일을 핑계대며 자신있게 웨이드의 호텔방으로 향하는데 막상 문을 열고보니 새로 들어온 예쁜 변호사가 야한 차림새로 웨이드와 놀고 있다. 체면을 다친 루시가 친구에게 뛰어가 훌쩍거리자 친구가 하는 말, “너 걸스카우트 이래로 우는 모습 처음 본다. 아니 부시가 당선됐을 때도 울었구나. 어떤 부시 때였지? 두번 다였나? 그래도 이번의 조지는 그 조지가 아니잖아.” 이때 한국의 관객도 웃음을 터뜨린다. 미국 대통령을 비웃을 정도의 정치 감각이 극장에도 찾아온 것이다.

루시에게 청혼하는 조지가 이제 자신은 가난해졌는데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헬리콥터도 가족과 나눠 타야 한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계급의 감수성 차이를 도무지 심각할 것 없는 유머 한마디로 활용하는 것은 한국영화 속에서는 아직 발견하기 어려운 배짱이다. 개그와 유머의 차이, 이것은 한국과 미국의 로맨틱코미디의 내공 차이인지도 모르겠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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