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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선 촬영하고 여기선 못질하고,<클래식> 미술감독 송윤회
황선우 2003-02-12

1990년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 작품세계의 문을 연 뒤부터 곽재용 감독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유려한 영상과 인상적인 주제곡”이었다. <비오는 날 수채화>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현식과 권인하, 신형원, 강인원이 함께한 주제곡과 함께 아름다운 화면이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강석현과 옥소리가 주연한 영화지만 오히려 동명 타이틀곡과 <커피향 가득한 거리> <오래 전에> 같은 영화음악과 어우러진 맑은 영상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

2003년 봄을 미리 만끽하게 하는 따뜻하고 애잔한 멜로 <클래식>도 예외는 아니다. 비오는 캠퍼스를 발맞춰 뛰는 남녀 주인공 위로 깔리던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이명을 남겼고, 60, 70년대 거리를 완벽하게 재현한 수원의 풍경은 고즈넉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이제 멜로는 지겹다”는 미술감독 송윤회(45)씨는, 멜로만 지독하게 고집해온 곽재용 감독의 더없이 손발 맞는 오랜 파트너다. 데뷔작으로 시작된 그들의 만남(그들은 군대동기이기도 하다)은 지금껏 한번의 등돌림 없이 계속 이어져온 셈. 곽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과 자잘한 소품 모두 송 감독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애잔한 사랑 이야기 뒤에는 애잔한 미술감독의 사연이 숨어 있다.

곽 감독의 작업 스타일은 이명세 감독의 꼼꼼함을 거의 빼다 박았다. 끊임없이 참견하고 사사건건 토달고, 완벽을 기하는 곽 감독식 작업방식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지만, 송 감독은 지금껏 별 싫은 소리 한마디 없었다. 다만 늘 시간에 쫓기는 게 아쉬울 뿐이다. 작품이 들어가는 시기가 대부분 배우들 캐스팅 시기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배우가 결정됐다는 소식만 전해지면, 이틀이건 사흘이건 세트를 완성해 촬영에 바로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클래식>은 손예진이 드라마 <대망>에 미리 캐스팅된 터라 촬영 일정을 조절하기가 조금 빠듯했다. 60, 70년대 수원을 재현할 거리 오픈 세트가 목포에 마련되고, 주인공들이 밀회를 나눌 나무다리가 대전 근교 하천에 자리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틀에서 사흘 정도였다. 한쪽에서 만들어진 세트로 촬영을 하면, 다른 한쪽에선 부지런히 못질을 하는 풍경이 크랭크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모티브는 창(窓). 따라서 엄마 주희와 딸 지혜의 방에 난 창은 30년이라는 세월의 간섭을 받지 않고 비슷한 모양을 간직하게 된다.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는 전라도 벌교에 있는 실제 가옥으로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영화팀으로선 타이밍을 잘 맞췄던 것. 널빤지로 다닥다닥 이은 나무다리 역시 미술팀의 작품인데, 극중 남자주인공이 반딧불이를 잡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위해 물 속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낮은 다리를 놔야 했다. 물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통에 무릎높이로 수위를 맞추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주희와 준하가 수박을 맛나게 서리해먹던 원두막은 <엽기적인 그녀>에 등장하던 원두막 세트와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수박밭도 물론 설정. 이만하면 미술팀 노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프로필

→ 1959년생·동국대 미술학과 80학번→ <비오는 날 수채화> <가을 여행>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미술감독→ 현재 내러티브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