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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누아르의 규칙을 벗어나,<무간도>

■ Story

진영인(양조위)은 경찰학교 시절 황 국장에게 발탁되어 10년째 갱단을 떠돌며 비밀요원을 하고 있다. 반면 유건명(유덕화)은 ‘삼합회’의 보스 한침의 명으로 18살에 경찰학교에 들어갔고, 지금은 전도유망한 강력계 반장의 자리에 올라 있다. 삼합회의 마약밀매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삼합회는 서로 자신의 조직 내에 상대방의 첩자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첩자를 밝혀내려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황 국장과 한침은 살해되고, 진영인과 유건명은 위기에 빠진다.

■ Review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 문화의 거의 모든 대중적 아이콘을 주도하는 하나의 진영으로 급부상했던 ‘홍콩누아르’는, 그러므로 다른 곳에서가 아닌 한국에서만 부르는 홍콩 액션영화에 대한 ‘애정’의 표시였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미 소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다들 잊고 있었던 ‘홍콩누아르’라는 비평적 용어를 영화 <무간도>는 다시 기억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무간도>는 그 명명을 반쯤은 허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컨벤션이 존중했던 가장 중요한 규칙은 날렵하게 저버리면서 그 틀을 벗어나는 영화이다. 때문에 예전의 끈적한 향수를 맛보기 위해 이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무언가 새롭게 제시되는 정돈된 감정도 같이 느껴야만 하는 어려움에 빠질지도 모른다.

10년째 홍콩 경찰의 비밀요원 노릇을 해온 진영인과 어린 시절부터 조직을 위해 경찰로 위장해온 유건명의 뒤바뀐 운명

우선, 이 영화의 긴장감을 직조하는 것은 <중화영웅> <풍운>으로 홍콩영화의 테크닉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감독 유위강이 아니다. 그의 홍콩 박스오피스 흥행작들과 <무간도>의 영화적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유위강과 함께 공동감독으로 올라 있고, 또한 각본을 맡고 있는 맥조휘가 아마도 이 영화의 숨은 창작자일 것이다. <무간도>는 홍콩 액션영화의 과잉적이면서도 동적인 액션스타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총격전도 보기 힘들며 있다고 해도 오우삼이 창조해낸 액션의 ‘법칙’들은 성립해 있지 않다. 영화의 긴장감은 경찰과 갱단 ‘삼합회’에서 서로 정보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진영인과 유건명의 상황이 서로를 비추며, 또는 서로를 위협하면서 팽팽해진다. 빠른 교차편집(이 영화의 편집은 <디 아이>의 감독 대니 팽이 맡고 있다)으로 진행되는 초반부의 견제장면이, 후반부 서로의 존재가 드러난 이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힘을 잃지 않는 것은 대부분 그 반전의 고비마다 작은 디테일들을 각 요소요소 배치해놓은 ‘각본’의 역량 때문이다.

갱단의 조직 내에 있는 비밀경찰, 경찰 강력계의 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갱단의 조직원, 이라는 식의 ‘뒤바뀐’ 운명에 대한 배치는 한마디로 <페이스 오프>의 또 다른 확장 버전이다. 진영인과 유건명은 얼굴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삶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 두 인물이 ‘삼합회’와 경찰간의 대립에 의해 외부의 동조자이며, 내부의 첩자 역할을 동시에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관계는 더욱 미묘해진다. 이런 식의 대치상황은 일찌감치 오우삼의 서사가 갖는 중핵이었다. <영웅본색>은 갱단의 두목인 형과 전도유망한 경찰인 동생의 대치상태를 이용해 서사의 중요한 갈등을 이끌어나갔다. 그리고, <첩혈쌍웅>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그러나 직업상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경찰과 킬러의 관계를 동원하였다. 결론은 모두 하나다. 결국 이들은 운명에 의해 자리가 정해져 있거나, 스스로는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의 힘에 의해 조종될 수밖에 없기에 또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우삼이 할리우드로 가면서 버린 것은, 즉, <페이스 오프>에서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이런 ‘이해’의 항목이다. 그리고 맥조휘가 받아들인 오우삼의 서사는 할리우드 진입 그 이후인 것 같다.

삼합회의 보스 한침은 유건명을 이용해 조직을 보호한다.(왼쪽)황 국장이 삼합회에 살해당한 뒤 진영인은 곤경에 빠진다.

경찰 내부의 첩자를 가려낸다는 명목으로 유건명은 부하 직원들을 시켜 황 국장을 미행하게 한다. 이 사건으로 황 국장은 죽게 된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던 황 국장이 죽게 되자, 유건명은 자신의 보스인 한침까지도 살해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전환점이다. 유건명이 보스를 죽이는 것은 갱단의 삶에서, 당당한 경찰의 신분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착한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행위는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에 속하기도 한다. 홍콩누아르라 불리던 홍콩 액션영화에서, 특히나 오우삼의 영화에서 ‘의리’란 어떤 범죄행위도 끝까지 같이할 수 있을 정도인 서로간의 신념을 일컫는 말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언제까지라도 그 구렁텅이에 머물러 있겠다는 의지이다. 이것이 한국 남성들을 미치게 했었다. 유 반장이 그 의리의 세계를 벗어나오려 할 때, <무간도>는 우리가 이해하는 홍콩누아르의 규칙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전의 홍콩누아르가 다짐하던 우정의 영역이 이 영화 속 인물들 진영인과 유건명 사이에서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어긋남에 있다. 어떻게 운명의 제자리를 찾아 서로를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뒤틀려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무간도>에서의 두 주인공 중 끝까지 황 국장의 죽음에 복수를 다짐하는 진영인만이 홍콩누아르의 향수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진영인이 죽음을 맞으며 홍콩누아르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때, 유건명은 할리우드식 개과천선의 주인공으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를 따라 보는가에 따라 <무간도>는 다른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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