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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와 한국영화

한국축구의 월드컵 4강신화는 지난 한국축구를 돌아보면, 말 그대로 신화이며 혁명이다. 나의 세대는 누구나 그렇듯 축구가 유일한 놀이이자 운동이며 꿈의 세계였다. 차범근 선수가 골을 넣는 날이면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줄거워했고 열광했다. 그러나 철이 들어 한국축구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축구는 더이상 나의 꿈의 세계가 아니었다. 언제나 되풀이되는 한국축구의 고질병 때문이다. 초반에 잘 뛰는가 싶더니 후반에 접어들면 맥없이 무너지는 체력부족, 공을 잡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허둥대는 개인기와 조직력 부족, 결정적인 찬스를 잡을 때마다 헛발질하는 골결정력 부족은 한국축구의 신화를 창조한 ‘히딩크’를 만나기 전까지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지금 충무로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할 ‘히딩크’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한국영화는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쉬리> 이후 한국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로 이어지는 흥행신화를 창조했고, 어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와 맞장을 떠도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한때 충무로에 돈이 넘쳐난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영화계 내부는 참담할 정도로 썰렁해졌다. 난립하던 투자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2∼3개의 메이저 투자 배급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휴업상태에 들어갔다. 지난해 초 이맘때쯤 한국 영화계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출발했다. 그것은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우후죽순으로 제작되면서 그 결과에 대한 기대와 우려였다. 술자리에서는 ‘충무로 5대 재앙’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충무로에 재앙을 가져올 한국형 블록버스터 5작품이 무엇이냐를 놓고 술렁대던 말이다. 이미 심정은 기대보다는 우려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는 증거다. 결국 그 옛날의 한국축구처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나버렸다. 지금 충무로는 그 재앙의 한파 속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영진위 정책연구실 자료에 따르면 2002년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까지 <가문의 영광> <색즉시공>으로 이어지는 한국영화의 흥행신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블록버스터의 실패에 대한 논란은 지난 이야기라 관심이 없다. 블록버스터의 재앙이 가져온 혹독한 한파를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현재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제작비 규모가 크거나 시나리오 내용이 조금이라도 무거우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너도나도 가벼운 멜로나 코미디를 원할 뿐이다. 이처럼 실패의 후유증을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실패의 두려움에만 휩싸여 있다는 것이 현실의 큰 문제다.

제작자들에게도 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작환경의 철저한 체질개선 없이는 한국축구처럼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갈 수가 없다. 가장 큰 딜레마인 제작비의 급상승은 누구의 책임이라 논할 수 없다. 시장의 논리를 무시한 기획과 프로덕션의 기본인 제작의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 가장 크다. 우리에게 메시아는 없다. 다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투자자, 제작자의 한 사람이 무엇보다 소중한 때이다.이승재/ LJ필름 대표 jeby@ljfil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