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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투

<화산고>의 김태균 감독과 “조선의 주먹” 마지막 시나리오를 정리하면서 거품나도록 입씨름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남은 정신을 집중, 조준하여 이 한몸을 침대로 던지는 순간 오버랩으로 휴대폰이 울렸다. 받아본즉,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와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뒤를 이어 “충무로 다이어리”라는 코너를 맡으라는 문석 기자의 애원을 빙자한 고압적인 일갈이었다. 황망한 제의! 두분에 비해 영화적 경륜이나 지명도는 차치하고라도 필력마저 확연이 달리는 내가 횡설수설 내지 하나마나한 소리로 일관하다가 동료나 지인들에게 짱돌이라도 맞게 되면 그 쪽팔림을 어디서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또 <블루> 개봉을 앞둔 시기여서 긴장과 초조함에 온 사지가 발발거려옴에 따라 그 낯섦과 생경한 일에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일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일주일의 장고를 허락하겠노라는 문 기자의 배려(?)성 멘트를 듣고 나는 이 건에 대해 더이상의 생각을 삼갔다(내 경험으로 나는 장고 끝에 내린 결론보단 끝까지 밀려 찰나의 수를 던질 때의 결과가 훨씬 나았으므로…).

그뒤 일주일은 긴장과 흥분, 아쉬움과 안도 등…. 오만 가지 감정과 떨림으로 지냈다. 윗분들과 의견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하고 “그렇게들 잘났으면 당신들이 알아서 해보시오”하며 마무리단계에서 내팽겨치듯하고 나온 작품이라고는 하나 근 1년을 매달려온 애증의 영화 <블루>의 시사가 연이어졌기 때문이다. VIP 시사가 있던 날!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찾아와줬고 투자사, 제작자, 감독들은 물론 일반 관객까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고 본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뜨면서 시작된 박수는 그칠 줄 몰라 공동제작자인 강제규 감독과 최현묵 사장, 주연배우 신현준 신은경은 물론 최성수 PD까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눈흘기던 가슴 아픔은 어느덧 사라지고 제발 잘되기만 기원하는 마음들이 서로의 안 된 부분을 쓰다듬고 맘좋은 표정으로 살가운 웃음을 건네는 화해의 자리기도 했다.

신현준의 열연을 축하하기 위해(신현준은 이제 당당히 연기파 배우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열연, 호연했다) 나는 박중훈, 김승우, 장동건, 주진모, 정준호, 차태현 등과 따로 술자리를 했는데 대박기원과 신현준에 대한 칭찬과 격려, 작품에 대한 소회 등을 거침없이 토로하고 분석하는 모습들을 보고 그들의 건강함과 다정함에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사양도 없이 오는 족족 잔을 받아 삼키느라 내 눈은 슬슬 풀려내려갔다. 후배 신현준의 호연이 그렇게도 좋았을까? 박중훈은 이미 근엄한 선배가 아니었고 마치 십년 가출하다 돌아온 맏형이 수세월 만에 만난 친동생을 보고 반가워하듯 껴안고 쓰다듬고 포옹해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담배를 입술 끝에 꼬나물고 하얀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신나게 드럼을 두들기는 장동건의 수려한 얼굴이 보이고 주진모가 기타를 들고 힘찬 스윙을 하고 김승우가 예의 현란한 춤솜씨를 곁들이며 열창하고 있는 것까지 참았는데 신현준과 서로 엉켜 막춤을 추던 박중훈이 나에게 권하는 술잔을 원샷하고 난 뒤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서서히 그러나 장렬하게 죽어갔고 곧 사고처리되어 귀가조치되었다.

다음날 숙취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울리는 전화벨…. 문석 기자가 “어떡할 거냐?”며 기습적으로 치고들어왔다. 나는 죽어 있다가 엉겁결에 응응거렸고 몇 마디 선문답이 오가고 난 뒤 내 입은 유언처럼 비장하게 말하고 있었다. “알았다. 해보자! 단 <씨네21>에 누가 될 조짐이 보이거나, 내 스스로 후달릴 때는 언제고 그만 쓴다”라는 전제를 깔고…. 여기까지가 조악스럽기 그지없는 내 장구한 출사의 변인 셈인데 벌써부터 횡설수설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 나도 심히 당혹스럽다. 그러나! 내친 김에 한번 더 갈지자로 걸어야겠다. “흥행여부와 상관없이 참으로 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영화 <블루>를 완성해 한국영화의 한 영역을 개척해낸 지오엔터테이먼트의 최현묵 사장과 최성수 PD 이하 전 스탭들에게 심심한 치하를 드리며 아울러 제작 중인 모든 한국영화의 순항과 건승을 기원하는 진심을 바치면서 이만 첫 전투를 끝마친다. 김해곤/ <파이란> <블루>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