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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그래서 시작한다 <어바웃 슈미트>
박은영 2003-03-04

■ Story

보험회사 중역인 워런 슈미트(잭 니콜슨)는 66살로 퇴직을 맞았다. 무기력과 권태, 퇴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슈미트는 구호단체의 캠페인을 보고, 아프리카 아동 돕기에 동참하기로 한다. 이로써 6살배기 탄자니아 꼬마 엔두구에게 편지를 쓰고 돈을 부치는 일은 그의 유일한 낙이 된다. 급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한 슈미트는 소원했던 딸(호프 데이비스)과의 조우를 기대하며 캠핑카 여행을 감행한다. 슈미트는 고향과 모교를 들러보고, 캠핑족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딸이 머물고 있는 예비 사돈(캐시 베이츠)네에 당도한다. 사윗감(더모트 멀로니)이 못마땅한 슈미트는 딸의 결혼을 무산시키려 하지만,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 Review

퇴직 파티, 각별했던 동료가 송별사를 바친다. “그는 평생 헌신해 회사를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가족을 정성껏 돌봤으며, 이웃과 진실한 우정을 나눴습니다. 한점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그렇게 보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남자 슈미트의 삶, 그 실상은 다르다. 새파란 후임자는 그 없이도 회사가 충분히, 아니 훨씬 잘 돌아갈 것을 자신한다. 사회에서 슈미트라는 인간의 ‘쓰임새’는 사라져버렸고,

그의 운명은 폐기 처분을 기다리는 업무 파일 박스의 그것보다 나을 게 없다. 지나온 인생이 ‘그래도’ 의미가 있었음을 증명해줄 수 있는 건 가족이지만 아내는 갑자기 죽어버렸고, 하나뿐인 딸은 냉랭하기만 하다. 슈미트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바웃 슈미트>는 벼랑 끝에 몰린 위기의 남자 슈미트의 ‘끝의 시작’ 또는 ‘시작의 끝’을 그린다. 초반부터 연타를 맞던 슈미트는 마침내 코너에 내몰린다. 일을 빼앗기고, 아내를 잃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아내와 친구의 불륜 사실을 접해야 하고, 귀한 딸이 보잘것없는 놈팡이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아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실감과 배신감의 파고에 허덕이던 그는 분연히 떨쳐 일어서 캠핑카에 오른다. 갈 곳 없고, 의지할 이 없는, 노년의 절박함으로, 슈미트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회에서 슈미트라는 인간의 `쓰임새`는 사라져버렸다. 지나온 인생이 `그래도` 의미가 있었음을 증명해줄 수 있는 건 가족이지만 아내는 갑자기 죽어버렸고, 하나뿐인 딸은 냉랭하기만 하다. 게다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준 여인에게 충동적으로 구애했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내 삶이 이 세상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켰던가.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주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슈미트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이, 이 세상을, 세상 누군가를 바꿀 수 있길 바라지만 그는 딸의 결혼을 훼방놓을 힘도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슬픔, 분노, 두려움, 외로움”뿐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준 여인에게 충동적으로 구애했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동네꼴이 말이 아닌” 사돈네에 경악하지만 그들 페이스에 말려버린다. 그에겐 자기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드는 일조차 힘에 부친다.

<어바웃 슈미트>는 관객에게 이중의 여정을 선사한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이따금씩 일치하지 않는, 기이한 로드무비. 고향으로, 모교로, 사돈네로, 오마하에서 덴버에 이르는 여정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동시에, 슈미트가 탄자니아 소년 엔두구에게 써보내는 후원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흘러간다. 슈미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하지만, 때로 미화하고 정당화하기도 한다. 엔두구가 영어를 이해할 리도 없지만, 이국의 노인이 쏟아내는 하소연을 이해할 리도 없다. 슈미트도 그쯤은 안다.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써내려가는 편지는, 그의 슬픈 독백이자 자위인 셈이다.

딸의 결혼을 막으려고 머나먼 길을 왔건만, 사돈 될 여자의 뜨거운 시선에서 도망다니느라 혼비백산하는 슈미트. 과연 그는 결혼식을 막을 수 있을까?

오즈 야스지로가 즐겨 그린 쓸쓸한 노년의 초상에, 프랭크 카프라가 체현한 미국적 가치를 접합한 듯한 인상을 주는 <어바웃 슈미트>는 ‘밸런스’의 영화다. 비극과 희극, 절망과 희망, 제도에의 저항과 순응 사이에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 절묘하게 그리고 영리하게 균형을 잡아나간다. 변덕스럽고 속물스럽고 유치하기도 한 노신사의 언행, 그가 여행길에서 겪는 황당한 사건들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그의 고독과 분노와 회한의 심연을 헤아리게도 한다. 미국 중산층민의 보편적인 삶과 가치관을 웅변하는 슈미트는, 사회가 권하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나름대로 가족에게도 충실했지만, 자본주의와 가족주의에 바쳐진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런 슈미트에게, 감독은 위로와 경배를 바치고 있다.

소품인 이 영화가 스펙터클하게 느껴지는 착각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에서 비롯된다. 특히 잭 니콜슨 없는 <어바웃 슈미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엔두구의 그림 편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마침내 오열하고 마는 잭 니콜슨의 모습은, 그것이 비록 나이브한 결론이라 할지라도,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그는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던, 최선이라고 믿은 삶에 배신당한, 모든 것이 끝난 뒤에 새로운 시작을 열망하는, 어리석고 무기력한 우리의 초상이기도 한 까닭이다.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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