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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연기,담백한 연출 <엠퍼러스 클럽>

■ Story

훈더트(케빈 클라인)는 퇴임한 전직 고등학교 교사다. 명문 사립학교에서 32년 동안 로마사를 가르치며 교장까지 맡았던 훈더트는 자기 경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느 날 기업가로 성공한 제자 벨(조엘 그레치)로부터 독특한 초대를 받는다. 학교에서 매년 치러지는 로마사 퀴즈 대회를 벨의 개인 리조트에서 다시 열자는 것. 벨은 학창 시절 이 대회 결선에 올라갔으나 부정한 방법을 썼고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 훈더트는 벨의 제안이 과거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회개일 것이라 여기며 벨의 리조트로 간다.

■ Review

<엠퍼러스 클럽>은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온 한 교사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영화다. 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여러 영화 중에서도 <홀랜드 오퍼스>에 가깝지만, 부임에서 퇴임까지 인생여정의 굴곡을 차곡차곡 따라가지는 않는다. 대신 한 가지 분명한 테마, 즉 타락한 사회에서 교사로서의 신념을 어떻게 지켜내느냐는 문제에 집중한다.

훈더트는 고지식하다. 성공을, 원칙을 지킨 결과물과 한치의 오차없이 동일시한다. “성취가 없는 포부는 무의미하다”고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외칠 수 있는 건, 그가 결과론자여서가 아니라 부정한 방법을 통한 성공은 그의 염두에 없기 때문이다. 훈더트의 고지식함이 공격받는 건 벨이 전학오면서다. 상원의원의 아들인 벨은 원칙이나 양심 같은 가치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어디 세상이 원칙대로 돌아가느냐며 훈더트를 비웃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훈더트의 꾸짖음과 배려에 힘입어 벨은 로마사 퀴즈 대회에 의욕을 갖고 임하지만 부정행위를 함으로써 훈더트를 멋지게 엿먹인다.

벨은 형편없는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아버지의 힘으로 예일대학에 간다. 그를 지켜보던 훈더트는 “품성은 운명이다”라는 옛 로마 현인의 말로 자위한다. 이 자위가 자기 신념에 생긴 균열을 가리는 미봉책에 불과했음을 퇴임 뒤 벨의 초대를 받고 간 자리에서 깨닫는다. 부정한 승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과 그렇게 늦은 나이에 맞대면한 훈더트는 그러나 온전한 신념을 되찾는다. “품성도 운명도 교육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되새기며 다시 평교사로 강단에 선다. 영화는 훈더트가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논리연산을 덧붙인다.

울림을 주는 건 그 논리연산보다 고지식할지언정 원칙과 신념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훈더트의 자세다. 그런 점에서 훈더트의 답답한 면을 좀더 드러냈다면 깊이가 더해졌을 것 같은데, 영화는 훈더트의 편에 서서 비교적 단순하고 명쾌하게 진행된다. 반듯하게 만든 TV 테마드라마 같은 소품이다. 임범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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