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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억울한 사람들을 위하여,SBS <솔로몬의 선택>

<솔로몬의 선택> SBS, 매주 토요일 저녁 6시50분

참으로 원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1월 중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전세계 곳곳에 체인망을 형성하고 있는 유명 리조트에 예약을 했는데, 2월 말이 되도록 여행 경비를 입금하라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 연락을 해보았더니 여행 예정일인 4월 중순에는 항공편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아 아무래도 예약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자칫하면 신혼여행이 물거품되는 게 아닌가 싶어 다른 지역에 있는 리조트라도 빨리 알아봐달라고 했더니, 다른 곳은 이미 예약이 꽉 찼고 제일 인기없는 리조트만 남아 있단다. 일생에 한번뿐인 남의 신혼여행을 이렇게 망쳐놓아도 되는 거냐고, 미리 전화라도 좀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수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러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정만 확정했을 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라 여행사쪽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거였다.

살다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어이없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 심야에 택시를 탔을 때, 요금은 분명 1920원이 나왔는데 2천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못 받으면 분통이 터진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왔는데 어제 산 새 신발을 다른 손님이 신고 가버렸을 때, 발에도 맞지 않는 그 손님의 헌 신을 구겨 신고 나오면서 알고도 모른 척하는 식당 주인이 얄밉기만 하다. 때로는 너무 사소한 일이라 생각되어 참고, 더러는 큰 손해를 보았어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어 그냥 넘어가는 일들. 사안이 중대할수록 “법대로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지만 법은 생각보다 멀리 있다. 식당에서 밥먹다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가고 싶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는 없지 않은가.

SBS <솔로몬의 선택>의 김은혜 작가는 “세상 사람들이 겪는 크고 작은 억울한 사연들이 매일 50∼70건씩 접수된다”고 했다. 엄동설한에 꽁꽁 얼어버린 보일러를 주인이 고쳐주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세입자, 아이가 횡단보도에서 킥보드를 타고 가다 차와 부딪쳤는데 대차 사고인지 대인 사고인지 모르겠다며 자문을 구하는 어머니, 경제적인 문제로 남편과 위장이혼을 했는데 알고보니 남편에게 여자가 있었다며 통곡하는 중년 여성, 레스토랑에서 분명 무알코올 음료를 주문해 마셨는데 집으로 가던 중 음주측정에 걸렸다는 30대 남성…. 법정으로 달려가기엔 어쭙잖지만 누군가 시원스레 대답을 좀 해줬으면 하는 사연도 있고, 당장 변호사를 만나봐야 할 심각한 사연들도 꽤 있다.

시청자들이 제작팀에 보내온 사연은 내용이 겹치는 경우가 많고, 이미 방송된 사례에 조금 경우가 다르다며 법적 자문을 구하는 이들도 많아 방송이 100% 시청자들의 사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작팀은 법률 사이트의 상담 사례를 모으고,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조사한 재미있는 판례들을 참고하고, 각종 매체에서 소개된 사건 등을 종합해 아이템을 선정하고 있다. 분명한 건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면 방송하지 않는다”는 것. 정통 법률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없었던 일을 가정해서 방송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지난해 7월13일 첫 방송 당시 채 10%가 되지 않았던 <솔로몬의 선택>은 총 34회가 방송된 현재 20%대의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시청자들의 호응을 서서히, 그리고 결국 열렬히 받게 된 것은 <솔로몬의 선택>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김은혜 작가는 “재미있고 특이한 사건보다는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방송할 때 시청자들의 반응이 더 뜨겁다”고 했다. 유괴된 아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절도행위를 하는 전과자나 살인자의 고해성사를 경찰에 알린 신부님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만, 시청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용실에 가서 장나라씨 머리처럼 해달라고 했는데 박경림씨 머리처럼 되었더라”는 사연은, 조금 우스꽝스럽긴 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우리네 사는 이야기’다. 방송을 보고 난 뒤 깨달은 바 있어 미용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는 시청자는 없겠지만, 미용실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순간 맺힌 가슴이 뻥 뚫리는 작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같은 사안을 놓고 변호인들이 서로 다른 법 해석을 하는 것도 <솔로몬의 선택>이 주는 즐거움이다. 방송에 출연하는 네명의 변호인은 사전에 VTR을 시청하지 않고 즉석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고 하는데, 변호인의 성격과 가치관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변호인들은 어려운 전문용어로 가득한 법전이 만고불변한 것이 아니라 실은 사람 사는 세상의 상식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정색을 하지 않고 보여준다.

제작팀은 “시청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법률 상식을 알려주는, 실용적인 사례를 더 많이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혹은 그건 그렇고, 여행사의 횡포에 쓰린 속을 달래야 하는 가련한 예비 신혼부부들의 사연은 혹시 다룰 의사가 없으신지?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