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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다급했나?<데이비드 게일>
김현정 2003-03-18

■ Story

형 집행을 사흘 남긴 사형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은 최후의 인터뷰 상대로 저널리스트 빗시(케이트 윈슬럿)를 지목한다. 열성적인 사형제도 폐지론자였던 게일은 동료교수이자 정치적 신념을 함께했던 동지 콘스탄스(로라 리니)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빗시는 게일이 무죄라고 직감한다.

■ Review

앨런 파커는 “상업적인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감독으로서 불성실한 자세”라고 말했다. <미시시피 버닝> <핑크 플로이드의 벽>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들을 연출했던 앨런 파커는 스릴러 형식을 취한 <데이비드 게일>이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영화라고, 신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강조했다. 무고하게 처형될지 모르는 한 남자.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관객을 이 힘겨운 주제로 미끄러지듯 인도하는 윤활유와 같다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윈슬럿과 함께 파커는 <데드맨 워킹>이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를 향해 한 걸음 가볍게 뛰어들었다.

사흘이라는 안타까운 시간과 다투는 <데이비드 게일>은 파커의 의도대로 일단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콘스탄스 몸 안에 남아 있는 게일의 정액, 그녀를 질식시킨 비닐봉지에 찍힌 게일의 지문, 알코올 중독과 불같은 성격. 이처럼 완벽한 증거보다도 <대화의 기술>이라는 책까지 펴낸 대학교수의 능숙한 언변을 믿어야 할 것인가. 믿는다면 원한 살 만한 행동이라고는 한 적 없는 콘스탄스를 누가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했단 말인가. 빗시는 증거와 그 증거가 남긴 빈틈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신과 콘스탄스가 보수적인 우파 정치인들의 음모에 희생됐다는 게일의 주장을 조금씩 믿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게일>은 게일의 목소리를 빌려, 그리고 게일이 무죄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기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사형에 처해진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돌이킬 것인지 묻고 있다. 이 질문 안에 게일이 성급하고 거칠게 내뱉은 숫자, 유색인종과 빈민층이 사형에 처해지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회적인 맥락은 끼어들 여지를 찾지 못한다. 로저 에버트는 “앨런 파커가 왜 흑인 소년들에게 부당하게 사형선고를 내린 유명한 사건을 버리고 백인 중산층 교수를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의문을 표했다. <데드맨 워킹>의 감독 팀 로빈스였다면 죄지은 자는 죽어도 좋은지 또 하나의 의문을 더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이 정치영화로서의 약점이라면, 한결같은 어조로 되풀이되는 사흘 동안의 인터뷰와 누구나 예상했을 반전은 스릴러로서의 약점이다. 앨런 파커는 이 영화를 시작할 무렵 배우조합 파업 때문에 다급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너무 다급했던 것 같다.김현정 para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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