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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실대다가 어느 순간 왈칵,<대한민국 헌법‥> 편집 문인대
심지현 2003-03-19

장르의 잡종 우세와 더불어 러닝타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도 요즘 영화의 추세다. 관객의 참을성이 배가된 건지 스토리의 흡인력이 높아진 건지는 모르지만, 편집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만큼 강약 조절의 묘가 필요할 법하다. 독립영화와 단편영화 편집을 주로 도맡다 극영화로 옮긴 문인대(43)씨는 “장편이라고 해서 더 어려운 건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감독의 의도를 충실히 전달해야 하는 독립·단편영화의 편집이 쉽지 않듯이 말이다. 리듬감을 부여해 관객이 쉴 때와 집중할 때를 구분해주는 일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강도가 같다”라고 말한다. 멜로 강세가 이어지는 요즘, 뜨끔한 풍자와 색기있는 조롱을 안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웃음보다는 감동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사방지>(1988) 이후 한참 만에 메가폰을 잡은 송경식 감독은, 일부러 감정선을 한 템포 늦췄다가, 나중에 죽였던 호흡을 터뜨려 더욱 커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편집을 부탁했다. 고은비(예지원) 후보의 2차 연설장면을 편집하며, 멋쩍은 말이지만, 문 기사는 혼자 울었단다. 실실대다가 어느 순간 왈칵 하는 기분이 들었다니, 감독의 주문이 제대로 들어먹힌 결과답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처럼 원작 시나리오가 만화로 발간되는 사례는 <와니와 준하> 이후 두 번째다. 영화 자체를 만화로 발간하는 일은 영화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노출되는 일이라 시나리오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 없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문인대씨가 단 한번에 읽어내린 첫 시나리오이기도 하고. 1999년 영진위 시나리오공모전 당선작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배역의 설정상 노출신과 여성 캐릭터들이 유난히 많았다. 극의 흐름에 방해받지 않을 만큼 각각의 캐릭터를 충실히 살려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제1과제였다. 초반 20여분간 나열되는 등장인물 소개를 지루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고 하자 대뜸 그는 “영화 <러브레터>를 봐라. 인물소개와 사건해설로 30분이 다 지나간다. 처음엔 관객이 지루해하지만, 결국 극의 종말부에 가서 감정의 폭을 더욱 확대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불가결한 과정이다”라고 덧붙인다. 간혹 말이 안 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해가 될 때까지 감독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그는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하는 장면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주의다.

편집일에 복무하기 전, 그는 호환성 좋은 컴퓨터처럼 이 일 저 일에 접선해댔다. 공대 재학 시절 이승철(현재 동시녹음기사)씨와 단짝 동기로 지내며 영화연출에 대한 꿈을 불살랐던 그였지만, 정작 졸업 뒤 이승철씨는 영화아카데미로 진학하고, 그는 갓 꾸린 신접살림을 위해 생계 전선에 나선 터였다. <구미호>의 음향효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계 인력과 면식을 튼 그는 디지털 편집기술이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는 이승철씨의 조언으로 아비드 편집기를 들여와 편집실을 차리게 된 것. 아직도 연출에 대한 그의 욕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

프로필

→ 1961년생→ 단편 <지우개 따먹기> <동화> <하늘색 고향> 편집→ 장편 <기막힌 사내들> <강원도의 힘> <아름다운 시절> <쇼쇼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편집→ 현재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편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