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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오랜 세월, 그 다난한 고난과 부침들을 겪어오면서 “한국영화 회생의 기미라도!”를 간절히 염원했던 영화인들의 통성어린 기도와 소망들은 여하한의 노력과 자본의 수혜로 응답받았을 때 조금 더 겸손하고 초심이었어야 했다. 투자위축과 부대여건의 악화가 이어져 위기의 감지가 느껴지기 시작한 오늘에 와서 소회를 피력한다면….

“한국영화의 부흥”, “르네상스의 도래” 운운하며 토하던 기염들은 간데없고 이제 모두 쉬쉬하며 한국영화의 전망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 얼마나 짧게 누린 영화인가? 위선도, 위악도 없다! 정직하고 진실하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본이라는 이름이 그 이면으로는 얼마나 또 냉혹하고 비정하던가? 결코 모르지도 망각하지도 않았건만 결과는 이렇듯 우리를 옥죄여 오고 있다. 거대 메이저사끼리 합치느니 마느니 대항마가 나와야 하느니 마느니 이도저도 여의치 않을 때 대세를 이룬 쪽을 향해 ‘불구가 되어도 상관없다. 무릎이 작살나도록 실로 담대하고 박력있게 끓어버려야 한다’느니…. 이런 자조적 한숨과 냉소가 대화의 행간을 메우는 어수선한 시류 속에서도 오로지 영화를 산업으로만 인식한, 흥행에 눈먼 투자사는 건전한 제작의 목을 더 거세게 휘어잡고, 제작은 살아남기 위해 자본의 전위병으로 전락해 비실거리면서 그 첨병으로 내세울 속칭 ‘다마급’ 배우들을 찾으려 핏발을 세우고 있다. 배우는 도구로 전락할 바 차라리 몸값이나 높이자는 구구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 이 이 볼썽사나운 이전투구 속에 냉엄한 심판이기도 하고 우리이기도 한 관객인들 온전할까?

백번 천번을 곱씹어도 우리 구애의 대상은 역시나 관객이다. 죽도록 사랑한다며, 그들을 향한 일평생 변하지 않을 사랑의 고백을 해대면서도 대상보다는 자신들을 돌보는 데 더 급급했고 결국 돌아오는 답은 싸늘한 외면, 서러운 외사랑 이 될 공산이 더 커졌다. 아니다! 어디 자신들 돌보는 데만 급급했던가? 가해까지 서슴지 않았다. 영양가 없는 문화 인스턴트만을 끝없이 생산, 투여, 공급함으로써 육체와 오감은 물론 그 영혼까지도 병들게 해 재미 외에는 그 어느 영화적 장점에도 눈감게 만든 그 치명적 불감을 유발시킨 게 가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가해란 말인가? 테러라 명명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근간에 만들어진 영화, 만들고 있는 영화, 기획 중인 영화 거의 모두가 휴먼의 가면을 쓴 하향 평준화된 코믹버전이고 조폭류이던데, 관객을 그렇게 길들여 놓으면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먹기야 하겠지만 그 변화무쌍한 대중의 식성이 다른 것을 노릴 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냔 말이다. 닥쳐서 만들어낸 것이 졸속임은 뻔할 거고…. 유행 따라 가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의 다양성은 확보해놓자는 얘기다. 누가 봐도 망신당해야 할 영화가 대박의 영예를 누리면서부터 우리는 잘못된 기획마저도 혹은 산으로 가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전자의 예를 들어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깡다구를 키워가더니 이제는 그 도가 도를 넘어 진지한 영화, 좋은 영화를 갈망하는 자들을 향해 철이 덜 들었다느니 아마추어라느니 태극기 두르고 독립영화 만들라느니 하는 문화적 추행까지 서슴지 않는다. 요즘 영화판 어느 술자리, 어떤 자리에서도 좋은 영화에 대한 그리움이나 소망은 없고 오로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가 대박타령이니, 우리가 무슨 로또복권의 원조도 아니고….

망조의 전조에는 늘 수모가 있다. 허구한날 배우 기근으로 고통받고 투자사로부터 뺀찌먹는 우리 제작자들, 자본 없이도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좀 하시오! 아니 그놈의 배우,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키우면 될 터인데 그 정도의 수고도 않고 몇 안 되는 다마 배우들만 쳐다보며 듣지도 않는 사모곡을 열심히 불러본들 그 영악스러운 배우들이 “내가 당신의 총알받이하겠소!” 하며 나서겠냔 말이오! 머리 조아리고 그 매니저들 목구멍에 바친 술값만 해도…. 그 수모도 모자라 TV드라마는 물론 오락프로에서까지 맹활약하는 솜털 보송한 데뷔 몇년차의 탤런트들에게 ‘3억5천 내놓으시오, 4억 아니면 영화 안할랍니다’ 하는 어처구니없는 협박까지 당하는 대목에서는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다. 영화에만 목숨 걸고 살아온 안성기, 강수연, 이미연, 박중훈, 최민식, 설경구 등등이 지금 얼마 받고 뺑이 치고 있는데… 3억5천, 4억이라니…

나, 영화현실 몰라 이런 얘기하는 거 아니다. 나도 알 만큼 안다. 그러나 이 수모가 영화 하는 우리 모두가 저지른 업보이기 때문에 우선은 모두가 자기 포지션에서 생각 좀 해보자는 것이다. 당하는 수모로 보아 위기인 것은 분명하나 망조로 가기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있다. 재능 출중한 사람도 충분하고 한없는 애정을 보내는 관객도 여전히 존재한다. 차분해지자. 그 다음 지나온 날들, 걸어온 길들을 되짚어보자. 지금은 맹렬과 열정스러운 투쟁보다도 그것이 더 중요한것 같다, 좁은 소견으로는….

추신: 들어온 대여섯권의 시나리오를 검토하다보니 한결같이 신경질날 정도로 말 안 되는 코미디와 조폭류 일색이어서 홧김에 이렇게 나오는 대로 갈겨썼다(그래도 벌어먹고 살기 위해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함에 더 약발받았던 것 같고…). 김해곤/ <파이란> <블루>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