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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도빌아시아영화제] 굳세어라 아시아!
2003-03-25

유럽에 아시아영화 알리는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그리고 사람

지난 3월13일부터 16일까지 프랑스 휴양도시 도빌에서 열린 제5회 도빌아시아영화제는 평범하다고만은 할수 없는 행사였다. 파리에서 자동차로 3시간 남짓한 이곳은 프랑스에서도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말과 휴가를 즐기는 소도시. 바닷가를 따라 자리한 고급 별장이나 곳곳에 정박 중인 요트와 널따른 폴로경기장, 페라리,포르셰 같은 스포츠카는 도빌의 `수준`을 한눈에 짐작게하는 지표들이었다. 이처럼 고급스런 장소에서 영화제,그것도 아시아영화만을 상영하는 축제가 열린다니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제5회 도빌아시아영화제는 `아시아영화의 창'이라는 성격을 더욱 확고히 한 행사였다.아시아 각국에

서 초청받은 영화 관계자들과 현지 유럽인들은 1년

만에 조우한 기쁨을 만끽했다.

게다가 매일 점심때와 저녁때 이 영화제의 스폰서인 에어프랑스, 에르메스, 레미 마르탱 같은 스폰서가 주최하는 자그마한 파티가 벌어지는 풍경을 보노라면, 돈 많은 부호들이 아시아영화를 눈요깃거리 삼아 즐기려는 행사가 아닌가, 하는 삐딱한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제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각국 영화제 관계자가 이곳을 찾았고,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샤를 테송이나 영화평론가 막스 테시에 같은 프랑스 평단의 권위자들도 객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럽지역의 영화배급사 관계자가 10여명 이상 참가했다는 행사조직위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 영화제의 실체가 궁금해진다.

<눈먼 광산> 5개부문 휩쓸어

1999년 아시아영화를 프랑스와 유럽에 소개한다는 목표를 갖고 알랭 파텔이라는 외과의사이자 영화애호가에 의해 시작된 이 영화제는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칸이나 베니스영화제 같은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만나기 힘든 아시아영화를 유럽인들에게 알리는 데 일조한 사실만큼은 알아줄 만하다는 것이다. 매년 이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작품은 30편 정도로, 유럽에서 배급되는 아시아영화의 규모를 고려하면 그리 적지 않은 숫자이다. 도빌영화제는 우디네영화제, 낭트 3대륙영화제 등과 더불어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 등을 통해 소개되는 ‘작가영화’를 제외한 아시아영화가 유럽 대륙에 상륙할 수 있는 흔치 않은 통로인 셈이다. 특히 2회 때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3회 행사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리고 지난해 4회 영화제에서 <파이란>이 각각 대상을 받으며 유럽 대륙에 위상을 나부낀 한국은 도빌영화제의 최대 수혜국가다. 영화제 수상 경력이 한국영화, 그리고 아시아영화를 유럽지역에 배급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우수감독상, 최우수작품상을 비롯, 5개 부문을 석권한 중국 리양 감독의 <눈먼 광산>, 중국 하층민의 비참한 삶을 리얼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 행사에서 한국영화의 ‘4연패’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누렸던 영광을 이어받은 작품은 중국 리양 감독의 <눈먼 광산>(盲井)이었다. 16일 열린 폐막식에서 <눈먼 광산>은 최고의 영예인 감독상을 비롯해 최우수작품상, 비평가상, 관객상, 남우주연상 등 무려 5개 부문을 휩쓸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예술공헌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영화는 중국의 불법탄광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심사위원들로부터 “대단히 용감하고 뛰어난 영화”로 평가받았다. 다섯번이나 시상식 무대에 올라야 했던 리양 감독은 감격스런 목소리로 “중국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번 수상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편 경쟁부문에 진출한 어일선 감독의 <플라스틱 트리>와 디지털비디오 경쟁부문에 오른 김지현 감독의 <뽀삐>는 비록 수상의 영광은 누리지 못했지만,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도빌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플라스틱 트리>는 다소 산만한 구성이 거슬렸지만, 뒤틀린 세 남녀의 사랑을 감각적인 영상에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를 제작한 RG프린스 필름의 레지스 게젤바쉬 대표는 “국내에서 가졌던 일부 시사회 때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프랑스 영화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프랑스 및 유럽지역 배급이 희망적이라고 밝혔다. 한편 영화제를 찾은 주연배우 조은숙은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홍콩의 종려시, 프랑스의 장 마크 바 등과 함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화상영과 더불어 도빌영화제에서 중요한 행사는 시시때때로 열린 파티였다. 이 자리에선 단지 사교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영화인들의 다양한 교류 사업이 이뤄졌다.사진은 에르메스 매장에서 열린 파티.

도빌의 관객은 김지현 감독의 <뽀삐>에 대해서도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은 “매우 귀여운 영화”, “신선한 구성이 돋보인다” 등의 평가를 내렸다. 특히 지난해 <수취인불명> 상영 때 동물보호협회 소속원들이 개 학대 장면을 문제삼아 항의시위를 할 정도로 한국의 애견문화에 회의적이었던 프랑스인들이었기에 이 영화에 대한 반가움은 남다른 듯했다. 비경쟁인 파노라마 부문의 <굳세어라 금순아>도 객석을 온통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규모 확대 꾀한다.

하지만 장편 경쟁부문 7편, 파노라마 부문 10편, 디지털비디오 경쟁부문 6편과 회고전, 특별상영작 등 모두 32편이 상영된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은 예년에 비해 다소 부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막작으로 <영웅>이, 폐막작으로 <무간도>가 상영된 데서 볼 수 있듯 대중성이 다소 강조된 듯한 이번 영화제는 경쟁작인 타이 핌파카 토위라 감독의 <원 나이트 허스번드>가 상영되던 15일 오후 각국 대사 초청 오찬행사가 열리는 등 진행면에서 약간의 혼선도 엿보였다. 이러한 작은 혼란은 올해부터 영화제를 꾸리는 주체가 바뀐 데서 그 원인이 찾아진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알랭 파텔은 갈수록 커지는 규모를 감당하지 못해 일선에서 물러났고,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라는 회사가 영화제의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이번 영화제는 알랭 파텔의 ‘사람 중심의 외교’와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의 효율적인 경영이 혼재하는 과도체제 아래서 운영된 셈이다.

하지만 장편 경쟁부문 7편, 파노라마 부문 10편, 디지털비디오 경쟁부문 6편과 회고전, 특별상영작 등 모두 32편이 상영된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은 예년에 비해 다소 부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막작으로 <영웅>이, 폐막작으로 <무간도>가 상영된 데서 볼 수 있듯 대중성이 다소 강조된 듯한 이번 영화제는 경쟁작인 타이 핌파카 토위라 감독의 <원 나이트 허스번드>가 상영되던 15일 오후 각국 대사 초청 오찬행사가 열리는 등 진행면에서 약간의 혼선도 엿보였다. 이러한 작은 혼란은 올해부터 영화제를 꾸리는 주체가 바뀐 데서 그 원인이 찾아진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알랭 파텔은 갈수록 커지는 규모를 감당하지 못해 일선에서 물러났고,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라는 회사가 영화제의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이번 영화제는 알랭 파텔의 ‘사람 중심의 외교’와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의 효율적인 경영이 혼재하는 과도체제 아래서 운영된 셈이다.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가 운영을 맡게 되면서 도빌아시아영화제는 내년부터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70년대부터 도빌미국영화제, 코냑스릴러영화제 등을 만들었던 이 회사는 모기업인 퓌블릭 시스템의 홍보, 광고 업무를 영화제에 결합시켜 획기적인 도약을 약속하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가 운영하는 도빌미국영화제의 경우 75년 창설된 이래 할리우드 스타들의 참여와 문제작의 대거 상영 속에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도빌아시아영화제의 현재보다 미래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영화제는 현재 소규모지만 머지않아 50편에서 60편, 아니 100편의 영화가 참가할 것이며 유력한 마켓도 열릴 것이다. 도빌미국영화제가 그랬듯 말이다.” 리오넬 슈상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 대표의 이야기가 현실화된다면 한국영화는 유럽으로 향하는 고속철도 노선을 얻게 될 것이다.

알랭 파텔 공동집행위원장 인터뷰"도빌은, 아시아영화로 통하는 창이다"

도빌아시아영화제의 창립자 알렝 파텔은 ‘프랑스의 김동호 위원장’이라 부를만한 인물이다. 어느 행사장에 가더라도 “뭐 불편한 건 없나요?”라고 묻고 다니는 그의 인자한 모습을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영화제 관계자, 감독 등과 인간적 교류를 통한 인맥을 만들어냈고, 에어프랑스, 에르메스 등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스폰서십을 따내는 등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도빌아시아영화제는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 행사부터 2선으로 후퇴해 당분간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는 그의 인상에서는 아쉬움과 후련함이 동시에 엿보였다.

운영권을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에게 넘기게 됐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영화제 규모가 커지다 보니 필요 예산도 올라가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들게 됐다. 올해 행사를 함께 운영한 뒤, 앞으로 3년동안은 영화제의 컨설턴트로 일하게 된다.

그동안 성과가 있다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부산영화제, 홍콩영화제, 대만영화제 등을 돌며 영화를 고르고 영화제 관계자, 제작자, 감독 등을 만났다. 새로운 아시아 감독과 배우들을 유럽에 소개했다고 자부한다.

산업적으로는 어떤 성과가 있었나.

지난해만 해도 7편이 배급선을 찾았다. 2년 전 소개된 한 영화에 나온 중국 여배우는 프랑스영화에 캐스팅돼 지금 어학을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이번 행사에 대해 평가한다면.

관객 수는 그리 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임박한 전쟁 때문인 듯하다. 이번에 회고전을 갖는 인도의 배우 아미타브 바흐찬은 전설적인 존재다. 칸에서도 할 수 없는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리오넬 슈샹 공동 집행위원장"산업적 잠재력이 큰 영화제다"

광고회사인 퓌블릭 시스템과 영화제 관련업무를 하는 퓌블릭 시스템 시네마의 대표 리오넬 슈샹은 내내 음지에 있었다. 그는 파티 자리에서나 행사장인 CID에서나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얼굴마담’보다는 조직가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듯한 그는 올해 행사의 이것저것을 챙기면서 내년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올해부터 도빌아시아영화제를 운영하게 됐다.

오래 전부터 아시아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부천영화제도 찾은 적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일본영화제를 연 적도 있다. 이 영화제를 통해 유럽과 프랑스에 아시아영화를 확산시키고자 한다.

개인적인 경력이 궁금하다.

애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1973년 알프스 부근의 아보야즈에서 판타스틱·SF영화제를 열었다. 그해에 스필버그의 <대결>을 소개했고, 이듬해에는 드 팔마의 <캐리>를 선보였다. 75년에는 도빌미국영화제를 조직했고, 82년엔 코냑스릴러영화제를 만들었다.

우리로선 기업이 영화제를 운영한다는 게 생소하다.

퓌블릭 시스템은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퓌블릭 시네마 시스템은 그 자회사다. 우리는 영화를 홍보, 광고, 마케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하고 있다. 예컨대 칸영화제 50주년 기념행사나 뤽 베송의 다섯 번째 영화를 알려냈다. 2년 전 칸에서는 홍콩영화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또 나카다 히데오의 <링>, 기타노 다케시의 <소나티네>도 홍보했고, <취화선>도 프랑스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영화제로 이윤을 창조하는 게 가능한가.

도빌아시아영화제로 당장 돈을 버는 건 불가능하다. 좀더 발전한 다음에는 모르겠다. 현재로선 아시아영화 소개와 파텔을 돕기 위해 뛰어든 것이다.

도빌아시아영화제의 발전방향은.

일단 영화제 기간을 늘리고, 영화 편수도 늘릴 것이다. 한 영화당 상영횟수도 3회 이상으로 늘려 좀더 많은 사람에게 영화를 볼 기회를 줄 생각이다. 이 영화제는 산업적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 좀더 많은 유럽 배급사와 미디어를 부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