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컴퓨터 게임
천재의 시대를 넘어서,리메이크 열풍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보다 창조성이 없는 것 같기도 같다. 음대마다 작곡과가 있어 계속 입학하고 졸업하지만 연주회에서도, 음반사에서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만 늘 인기다. 소더비에서 최고가로 낙찰되는 것은 늘 고흐나 모네고, 미술관에서도 현대미술쪽은 어딘지 한산하다. 대중예술은 좀 낫다. 사람들은 아직 동시대의 노래나 포스터나 광고,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건 대중예술의 역사가 짧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대중예술이 본격적으로 발화한 지 아직 100년도 안 되었는데 만드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새로운 것보다는 예전 것의 리메이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패션은 50년대,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규칙적으로 순회한다. 영화도, 음악도 리메이크 열풍이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의 역량이 선조들보다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인류에는 일정량의 창조성만 주어져 있어서, 그게 고갈된 다음부터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몽땅 건드리던 천재의 시대가 끝나고 한 분야에만 좁고 깊게 매달리는 사람만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게임도 다를 게 없어서 예전에 이름있던 게임들의 리메이크가 성황이다. 고전 게임 리메이크라는 게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어렵다. 예전의 명성은 기댈 언덕인 동시에 넘어야 할 벽이기도 한 것이다.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그래픽만 새것으로 얹어놓은 것만 가지고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완전히 갈아엎어놓으면 예전 느낌이 없다고 비난받는다. 게이머를 즐겁게 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다른 게임과 차별되는 그 게임만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여는 신세계에서 이를 새롭게 구현한다. 높아진 눈높이에 걸맞게 화려하고 스케일이 크면서도 예전에 주던 소박한 재미를 관통해야 한다. 고전 게임의 리메이크는 아주 쉽게 할 수 있지만, 또 아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사실 <프로거>처럼 흥행에 성공하는 리메이크작은 많지 않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기대만큼이나 큰 혹평과 함께 침몰했고, <아르고스의 전사>나 <혼두라>는 게임성에 비해 흥행이 부진했다.

<시노비> 역시 유명 고전 게임의 리메이크작이다. 수리검을 들고 단신으로 두배 이상 큰 적과 맞서던 기억이 선명하다. 요즘 게임답게 풀 3D그래픽에 수준 높은 동영상은 기본이다. 주인공 역시 예전의 점 몇개로 구성된 단순한 오브젝트에서, 빨간 스카프를 멋지게 휘날리는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액션은 겉보기뿐 아니라 플레이감 자체가 진화했고 3D라는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임성을 끌어왔다. 게임 플레이는 공간 활용과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공간은 단순히 멋진 배경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점프, 하이점프, 벽타기, 스텔스 대시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는 입체적 세계다. <시노비>는 과거의 게임성을 잊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게임성을 창조했다.

이 정도면 진보적 리메이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명성에 기대어 소재 빈곤과 게임시장 불황을 해결해보려는 부정적 리메이크의 혐의는 <시노비>에는 당치도 않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미적거린다. 천재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것들을 멀리서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다. 패러다임을 바꿀 힘을 가진 천재의 시대는 이미 종결되었는지, 아니면 같은 시대이기 때문에 코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박상우 /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