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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고통, 그 충돌의 산물, <지구를 지켜라!>
김현정 2003-04-01

■ Story

병구(신하균)는 안드로메다 왕자가 이끄는 외계인 군대가 지구를 침략할 거라고 믿는다. 개기월식이 D-Day라고 추측한 병구는 화공회사 사장 강만식(백윤식)을 납치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자백하라고 고문한다. 영문 모르고 잡혀온 강 사장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던 중 병구와의 해묵은 인연을 깨닫는다.

■ Review

<지구를 지켜라!>는 아주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됐다. 장준환 감독은 안티 디카프리오 사이트가 퍼뜨린, 디카프리오가 사실은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영감을 줬다고 고백했다. 이런 소문은 진부한 헛소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준환은 자신이 존 레넌이라고 믿는 청년을 찍은 단편 <2001 이매진>으로 일찍 주목받았던 감독이다. 처음만으로 끝을 짐작할 수 없는 그 단편처럼, <지구를 지켜라!>는 보잘것없는 씨앗을 빽빽하게 뒤엉킨 덤불로 키워낸 영화다. 시간과 공간의 자유, 용기있고 재능있는 배우들을 얻은 이 데뷔 감독은 조잡한 핸드메이드 고문장치와 특수무기, 100여쪽에 달하는 외계인 연구노트가 언제 위력을 드러낼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세계를 거침없이 지휘한다.

고문의 첫 번째 단계부터 <지구를 지켜라!>는 웃음과 고통을 한꺼번에 품으면서도, 그 두 가지 느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충돌의 산물을 뱉어낸다. 물파스가 외계인의 신경계를 파괴한다는 이론에 웃을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병구가 물파스의 흡수를 돕는다면서 때수건으로 강 사장의 발등에 피가 밸 때까지 문지르는 다음 장면은 이 영화가 심상치 않으리라는 상쾌한 예감을 낯선 자극과 함께 드러내기 시작한다. 병구가 탈출 직전에 좌초한 강 사장의 손등을 지그시 밟아 누르는 표정이나 죽은 아버지 관자놀이에 꽂힌 추억의 칵테일 우산도 한마디로 압축하기 힘든 몇겹의 감정으로 남는 대목들이다. 여기에 더해진 의 우주 기원과 <유주얼 서스펙트>의 날조된 증언 등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충분하게 갈고 닦아 봉합한 유머다.

그렇다고 <지구를 지켜라!>가 장난 같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빼앗기기만 했던 병구의 아픔과 그런 병구에게 강 사장 혹은 그의 회사가 가한 마지막 일격은 자칫 날아다니기만 했을 이 영화에 중력을 부여한다. 현실만도 아닌 것이 상상만도 아니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한숨을 내쉴 때쯤 한 고비를 다시 시작하는 결말 역시 양자택일의 편한 길을 무시하는 이 영화에 어울리는 선택. <오버 더 레인보우>를 지겹도록 틀어대는 <지구를 지켜라!>는 무지개 너머에서나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예상 못한 놀라운 상상력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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