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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로 알리 특별전] 랭보의 시가 영상으로 재림한다면?
문석 2003-04-14

19, 20일 열리는 ‘크로스비주얼의 쾌락 뒤집기’, 안테로 알리의 비디오 포엠 10편 상영

시(詩)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일반 극)영화와 가장 거리가 먼 예술에 속한다. 물론 영화가 시와 담을 쌓고 지내는 것만은 아니다. 일부 작가주의영화는 시적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상당수 실험영화에서 시는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비디오 포엠’(Video Poem)은 어떤가.

4월19일과 20일,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주최로 서울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열리는 행사 ‘크로스비주얼의 쾌락 뒤집기-Rave: Poem: Performance Of Visual’은 비디오 포엠, 즉 비디오로 쓴 시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음악, 퍼포먼스, 문학 등 다른 예술과 영화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문화형식을 소개하는 이 자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비디오 포엠 분야를 열심히 개척하고 있는 안테로 알리의 비디오 포엠 작품 10편이다. 아르튀르 랭보, 라이너 마리아 릴케, 파블로 네루다, 실비아 플라스, 트리스탄 차라 등의 시와 자작시를 영상과 결합시킨 이들 작품은 영상언어의 또 다른 양태를 보여준다.

195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안테로 알리는 70년대 연극과 춤, 명상 등을 결합한 ‘파라시어트리컬 그룹’에 참여했고, 90년 이후로는 디지털 비디오 작업을 하면서 미국의 아트하우스 소극장 등지에서 상영회를 가져왔던 인물. 그는 파라시어트리컬 공연을 영상으로 옮기거나 장편 실험영화를 찍었으며, 비디오 포엠은 그 작업의 일부다. “내 비디오 포엠은 스토리를 말하거나 텍스트 그 자체에 깃든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를 애매모호한 내러티브로 사용한 실험적 단편영화다”라는 그에게 시는 이미지가 아닌 이야기다. 그의 비디오 포엠에서 시는 오히려 영상과 묘한 긴장을 이뤄나간다. 대신 시는 그가 추구하는 ‘모호한 내러티브’를 제공해준다. “시를 영화적, 연극적으로 해석하려면 시에 대한 틀에 박힌 생각을 부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번에 상영되는 안테로 알리의 비디오 포엠은 모두 10편. 아르튀르 랭보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Mouvement, 4분, 2001년)은 랭보의 상징주의적 세계를 지극히 초현실주의적 영상으로 옮긴 작품. “휴식과 눈부심/ 홍수 같은 빛에 비쳐져서/ 연구의 무서운 밤에로…” 등의 구절이 내레이션되는 와중 해적선, 갈매기, 야만인 등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그리고 누구한테 죽었는지 모른다면/ 나는 몇시인지 묻게 될까?”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문제의 책>(Book Of Question, 4분, 1993년)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글을 원전으로 삼는다. 병든 노인과 딸의 대화를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만일 노란색이 다 떨어지면/ 우리는 뭘로 빵을 만들까?” 같은 시구가 흘러나온다.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영화화한 <마녀 연소>(Witch Burning, 6분, 1998년)는 에드 번의 퍼포먼스와 “여기서부터가 역겨운 부분이에요. 나는 마녀들의 다트판/ 오직 악마만이 악마를 먹어치울 수 있죠” 등의 시 구절이 함께한다.

<요정>(Fairy, 4분, 2001년)은 랭보의 시를, <안티 철학자>(Anti-Philosopher, 4분, 1999년)는 다다이즘 시운동을 했던 트리스탄 차라의 시를 각각 인용한다. 특히 안테로 알리의 자작시를 영상으로 옮긴 <지옥 변방에서의 백합>(Lily In Limbo, 27분, 2001년)은 그의 작업 파트너 실비 알리의 퍼포먼스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초현실주의 영상이 결합돼, 독립영화 인터넷 매거진 <필름 스레트>의 ‘90년대 최고의 단편영화 톱 10’ 중 8위에 들기도 했다. 그의 비디오 포엠은 일반적인 영상문화에 길들여진 관객에겐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대안적인 영상을 고민하는 이라면 일종의 레퍼런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퍼포먼스와 영화가 결합된 ‘해프닝과 디지털 모션으로의 세계’ 부문에서는 비주얼 퍼포머로 활동하는 최종범의 <비주얼 퍼포먼스_빛 2003 2>가 소개된다. 그는 디지털 영상과 자신의 연기를 통해 무수한 조직과 구성으로 이뤄진 공간인 신체를 보여주며 자연과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연과 연속성: 비주얼 레이브, 그 쾌성의 목소리’는 음악과 디지털 영상의 결합체인 ‘레이브 영상’을 선보이는 자리. VJ 영신의 는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응용되는 프랙탈의 세계를 음악과 영상으로 끌어오며, <나노 테크놀로지>의 이은택은 초미립 과학인 나노공학을 소재로 삼는다. VJ 우주는 에서 그동안 자신이 제작한 단편영화, 영화 예고편 등의 영상과 음악을 리믹스해 보여준다(문의: 02-337-2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