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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 호걸들 의리없는 세상으로 귀환하다,<엑스맨2>

■ Story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괴한이 침입한다. 인간의 눈에 포착되지 않을 만큼 빠른 움직임, 경호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괴한은 “돌연변이에게 자유를”이라는 구호가 새겨진 단도를 남겨둔 채 사라진다. 암살기도가 있고 난 뒤 돌연변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돌연변이 전문가 스트라이커(브라이언 콕스)는 문제의 진원지로 사비에 영재학교를 지목하고 나선다. 한편 사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는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이면에 정치적 음모가 있음을 간파하고 암살자를 추적, 스톰(할리 베리)과 진(팜케 얀센)을 급파하는 한편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 매그니토(이안 매켈런)를 찾아간다. 하지만 엑스맨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비에 영재학교로 스트라이커의 특수부대가 급습한다.

■ Review

묘하게도 <엑스맨>의 슈퍼히어로는 무협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정파와 사파가 대립하고 강호의 고수들이 서로 다른 무공으로 자웅을 겨루는 이야기, 그것은 정작 홍콩무협영화에선 제대로 표현되기 힘든 세계였다. 방대하고 광활한 무협지적 상상력을 가감없이 스크린에 펼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서극의 위대한 실패작 <촉산>이 입증한 대로 그것은 영영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일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엑스맨>은 흥미롭다. <반지의 제왕>이 그랬듯 <엑스맨> 또한 홍콩무협영화가 시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협지적 흥분과 쾌락에 근접해간다. 정파와 사파의 대립이 주축을 이뤘던 <엑스맨>에 이어 <엑스맨2>에서 정파와 사파는 일시적 동맹을 맺는다. 정사의 구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위기, 강호의 피바람을 막기 위해 엑스맨과 매그니토가 힘을 합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엑스맨>은 무협지와 다르다. 1963년 마블코믹스의 만화 <엑스맨>이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미국에선 ‘백인전용’이라는 간판을 단 술집과 식당이 드물지 않았다. 1편이 사비에 교수와 매그니토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의 대립구도로 이뤄진 데서 알 수 있듯 <엑스맨>은 미국의 정치, 사회현실을 판타지라는 필터에 걸러 투영한다. <엑스맨2>는 이런 점에서 1편보다 정치적이다. 2편의 오프닝에서 관객은 링컨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가운데 한 문장을 듣게 된다. “우린 적이 아닌 친구입니다. 열정 때문에 우정이 깨져선 안 됩니다.” 그러나 링컨의 교훈은 현실의 폭력 앞에 무용지물이다. 백악관의 투어가이드가 상냥한 목소리로 감동적인 연설을 이야기하는 동안 대통령 집무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총알보다 빨리 움직이는 돌연변이의 대통령 암살기도, 뒤이어 돌연변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9·11 이후 미국이 아랍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상기시킨다. 공화당 매파의 우두머리(혹은 이 묘사한 정치가)처럼 보이는 스트라이커가 사비에 영재학교를 소탕하려는 대목 또한 이라크전을 시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스트라이커는 학교 농구코트에서 튀어나온 엑스맨의 비행기 사진을 보여준다. 빌미가 확보되자 전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현실의 정치역학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엑스맨>의 무기는 따로 있다. <엑스맨2>는 이 프랜차이즈의 진정한 매력이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1편에서 살을 뚫고 솟아나는 칼날이 “매번 아프다”고 말하던 울버린이 같은 운명을 타고난 여인 데스스트라이커를 물리칠 때 느껴지는 상실감, 텔레파시가 점점 강해져 괴로워하던 진 그레이가 홀로 남아 염동력으로 비행기를 떠올릴 때의 희생정신, 목숨이 위험하지만 로그에게 입맞춤하고픈 욕망을 참을 수 없는 아이스맨의 순진한 열정, 강한 존재에 대한 선망으로 매그니토의 제자가 되려는 파이로의 반항심 등 <엑스맨2>는 일일이 돌보기 힘든 수많은 등장인물들에게 한순간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공감을 끌어낼 만큼 충분하지 않다 해도 액션의 리듬을 만드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 1편의 악당 매그니토가 탈출하는 순간 전율이 흐르는 이유도 그것이다. 매그니토는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비에 교수에게 “학교 아이들이 잡혀가는 악몽을 꾸지 않나?”고 물어본다. 그리고 2편에서 매그니토가 예견한 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플라스틱 감옥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매그니토가 악의 편이라고? 메시아의 재림처럼 위풍당당한 그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낄 때, 그런 선입견은 철저히 무너진다. 동방불패 못지않은 위대한 악당에게 박수를!

재기넘치는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여기에 촌철살인의 유머를 더한다. 1편에서 엑스맨 복장에 대해 투덜대던 울버린이 이번엔 “이중 누군가는 알 거야”라는 매그니토의 말에 “난 할말 없소”라고 답했다가 핀잔을 듣는다. “자네만 주인공인줄 착각하지마.” <엑스맨> 시리즈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런 농담은 울버린이 무기를 버리라는 경찰의 명령에 손마디에서 삐져나온 칼을 내보이며 “그렇게 할 수 없어”라고 답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엑스맨2>의 다양한 메뉴 가운데 액션쪽은 이번에도 남자보다 여자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미스틱은 2편에서 레베카 로민-스타모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며 전편에 이은 우아하고 유연한 몸동작에다 성적 매력의 파괴력을 추가했다. 2편에 새로 등장한 데스스트라이커의 예리한 발차기나 나이트크롤러의 번개 같은 움직임도 미스틱의 강렬한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프랜차이즈영화가 다 그렇듯 <엑스맨2>도 개봉하면 1편과 비교해서 나은지 아닌지에 관한 여러 견해가 나올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엑스맨2>를 보고나면 이 시리즈가 스펙터클의 규모에선 못 미치지만 이야기와 캐릭터의 무궁무진함에선 <반지의 제왕>에 필적하리라, 확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40년간 발간된 만화가 인기를 유지했던 비결을 <엑스맨2>는 잊지 않고 있다. 1편은 매그니토가 만든 자기증폭장치가, 2편에선 사비에 교수가 만든 세레브로가 강호에 파란을 몰고온 ‘무공비급’이었다. 무공비급이라는 맥거핀을 차지하기 위한 강호 고수들의 격돌, <엑스맨> 시리즈는 거기에서 사랑, 성장, 배신, 질투, 복수의 드라마를 그린다. 할리우드 무협지의 최신판 <엑스맨2>는 동방의 영웅호걸들과 자웅을 겨룰 만한 상대다.

제작자 로렌 슐러 도너

“007 같은 장기 프랜차이즈 꿈꾼다”

- <엑스맨> 1편을 만들 때 이미 2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영화산업이 예측불능의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엑스맨>은 40년에 걸친 스토리와 캐릭터를 갖고 있는 만큼 성공해서 007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를 만들길 희망했다. 본드 시리즈가 15편 넘어서며 시들해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엑스맨12>를 만들고 “자, 우린 할 만큼 했으니 그만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이미 3편 계약을 맺은 멤버도 있다.

-<엑스맨2> 제작에서 가장 큰 도전은.

1편에서 보여준 내용을 반복해 팬들이 식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한편 1편을 안 본 관객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이드라인 사이의 균형이었다.

- 현란한 CG가 널린 시대에 만화책이 아직도 인기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에서 만화책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누린 것은 2차대전 직전이었다. 슈퍼 히어로를 통해 도피하면서 경찰이나 총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액션을 즐길 수 있는 방편이었다. 할리우드 역시 만화를 통해 액션영화의 새로운 차원을 얻었다고 본다.

- 냉전 히스테리는 지금도 테러 등의 계기로 이어진다.

편견과 불관용은 줄곧 존재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당신이 마이너리티라도 사회 속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60년대 태어난 <엑스맨>의 또 다른 재미는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남자 흉내를 내지 않으면서도 남자들의 엉덩이를 걷어찰 수 있을 만큼 세다.

- 캐나다를 로케이션으로 고른 것은 저렴해서인가.

미국 달러의 65% 비용이 들고 세제 혜택도 받는다. 더욱이 눈 내리는 날씨가 필요했다.

- 캐스팅이 국제적이다. 해외 시장의 중요성 때문인가.

그것보다 연기력이 우선 기준이다. 수많은 세계의 좋은 배우를 두고 미국 배우에게만 기회를 준다면 어리석다. <엑스맨> 1편은 미국 내 수입보다 해외 시장 비중이 컸다. 기본적으로는 1:1이 평균이지만. 과거에는 스튜디오들이 비미국 배우 캐스팅을 반대한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 반전 무드로 다른 나라 관객이 할리우드 보이콧 운동을 벌일 가능성을 염려하는지.

깊이 사태를 인식하며 걱정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일부 멍청한 미국인들 때문에 거대한 반미 의식이 생겨났다. 뭐, 항의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미지의 존재에 대한 한 사람의 공포가 불관용을 재난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제작노트를 당신의 말과 연결지어도 될까.

나란히 연결해도 좋다. 백악관 상영회를 해보라고? 그들이 원한다면야!

LA=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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