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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게임 <식신의 성>

명쾌한 논리, 순수한 게임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게임을 평가하는 데 그래픽이 제일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수준 이하의 게임이 그래픽만 좋다고 칭송받는 건 아니지만, 단지 저해상도라는 이유만으로 재미있는 게임이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한때 그렇게 인기있던 슈팅 게임이 어느새 시대에 뒤떨어진 장르로 취급받는 것이, 어쩌면 기술 진보의 혜택을 비교적 덜 받은 장르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슈팅 게임만은 5년 전 게임이나 요즘 나온 거나 눈으로 보기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슈팅 게임의 논리는 명쾌하다. 많은 적이 나온다. 각각 초당 몇십개의 총알을 쏘아댄다. 피한다. 그리고 맞서 쏜다. 폭탄을 쓰면 화면 가득한 적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통렬함을 맛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개수가 제한되어 있다. 하다보면 화면을 꽉 채우는 거대한 보스가 나온다. 요즘은 2단이나 3단 변신을 하는 게 유행이다. 적의 총알을 피하면서 나는 맞힌다. 아무리 변용을 해도 슈팅 게임의 기본 논리에는 변함이 없다. 슈팅 게임에는 그 밖에는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는 순수한 공방이 존재한다.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아름다운 그래픽에 눈을 홀릴 수 있고, 감동적인 스토리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슈팅 게임은 오로지 공방, 적과 나의 대결이라는 상호작용으로만 승부한다. 이 승부는 대단히 공평하다. 물밑거래로 몇십만원짜리 칼을 들고 처음부터 유리하게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총알 한방이면 죽고, 정해진 개수의 폭탄만 가지고 시작한다. 믿을 건 자신의 눈, 그리고 손뿐이다. 시작하자마자 화면의 1/3이 폭격으로 가득 찬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상념이 모두 사라진다.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적의 총알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틈과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나의 기체뿐이다. 적의 기체에서 쏟아지는 총알은 순수한 기하학적 도형을 그린다. 내가, 그리고 적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지만 그 추상적 아름다움은 망쳐지지 않는다.

순수한 사람은 인기가 없다. 극단적으로 한 가지만 추구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떨어져나가고 남는 건 얼마 안 되는 열렬한 팬뿐이다. 적은 만큼 더 소중한 환호에 보답하기 위해 슈팅 게임은 점점 어려워져만 간다. 대중은 더욱 외면한다. 이것이야말로 슈팅 게임의 딜레마다.

<식신의 성>은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 중 하나다. 도쿄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배후에 있는 어두운 힘을 찾아내기 위해 특수요원들이 나선다.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스테이지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사연들 역시 재미있다. 그렇지만 <식신의 성>은 여전히 슈팅 게임이다. 핵심은 게임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며 쏟아지는 총알이 그리는 유연한 곡선은 여전하다. 하지만 긴장감을 극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몇 가지 장치들이 추가되었다.

아군 기체에서 실제 총알이 맞는 피격점은 아주 작다. 옛날 게임들에서는 총알이 비행기에 맞으면 바로 터졌지만, 요즘같이 총알이 비오듯이 해서야 진행을 할 수가 없다. 피탄점이 아주 작기 때문에 어느 정도 총알을 맞더라도 살아남는다. 불가능해 보이는 좁은 틈을 빠져나갈 수 있다. 적에게 가까이 갈수록 위험도가 높아진다. 기체를 감싸는 오로라의 색깔이 변하며 무기의 위력이 강해지고 점수도 많이 받는다. 게임은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고 있다. 남은 것은 장르의 몰락 혹은 부활을 직접 판단하는 것뿐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