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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부자라서 미안해요
2003-05-07

테데시의 감독 데뷔작 <낙타가…>, 자전적 내용과 솔직한 연출로 호평

지난 4월16일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시의 데뷔작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더 쉬운…>이 프랑스에서 화제작이 드문 시점에 개봉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90년대 새롭게 등장한 젊은 감독들 중 특히 로랑스 페레리아 바르보사, 노에미 르봅스키와 같은 여자감독들의 영화에 존재의 중심을 잃은 신경증적인 여자 역할을 맡아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신인 여배우의 하나로 자리잡은 테데시는 감독 데뷔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배우가 감독을 겸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프랑스 영화계에서 테데시의 행보가 관심을 모으는 것은 영화가 공공연하게 자전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낙타는…>은 지난해 안드레이 줄랍스키와의 헤어지는 과정을 영화화한 소피 마르소의 <내게 사랑을 말해줘>와 공통점을 지닌다. 여배우로서 대중적인 지명도는 소피 마르소와 견줄 수 없지만, 테데시의 개인적 삶이 호기심을 모으는 것은 그 이름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부를 상징하는 튜랭 지역 출신인 테데시 일가는 70년대 초반 붉은 여단의 테러리즘이 이탈리아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을 때 이를 피해 프랑스로 이민해온 예외적인 즉, 매우 부유한 이민 계층에 속한다.

너무 부유한 것,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시의 존재론적인 고뇌는 여기서 출발한다. 영화의 타이틀인 <낙타는…>는 성경의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에서 따온 것. 영화의 첫 장면도 자전적 인물이자 감독이 직접 연기한 주인공 페데리카가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다. “무엇을 고백하고 싶습니까?”란 신부의 질문에 “전 부자예요, 그것도 아주 부자예요”라고 고통스럽게 페데리카가 답하는 장면은 너무 진지해서 폭발적인 웃음을 유발시키며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예고한다.

영화에서 ‘돈’이 문제가 된 건 너무 많아서라기보다 대게 너무 모자라서였는데 <낙타가…>는 너무 부자인 여자의 죄책감을 출발점으로 자신이 속한 환경, 가족, 친구 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에 대한 좀더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낙타가…>는 누벨바그 이후 프랑스영화의 한 특징인 자전적인 성향을 이어받으면서도, 직접적인 체험을 형식적인 고민없이 재현하면서 주제적인 보편성의 추구에 만족하는 프랑스적 가족드라마를 피하며, <카이에 뒤 시네마>와 <르몽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의 지지를 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