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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액션블록버스터,<매트릭스2 리로디드>
■ Story

시온이 컴퓨터 군단에 장악될 위기에 처하고, 네오, 트리니티, 모피어스는 예언자 오라클의 도움을 얻어 매트릭스의 심장부로 향한다. 그 방으로 안내할 키메이커의 행적을 찾아낸 이들은 키메이커를 데리고 신출귀몰한 악당 트윈스와 매트릭스 요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탈출구가 제한된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 Review

날아가는 총알과 격투의 한순간을 합성했던 ‘불렛 타임’, 그리고 트리니티의 발차기를 360도 회전으로 보여주던 ‘멋진 신세계’의 행진이 멈칫거린다. 14분의 고속도로 추격신은 놀라운 액션이고, 100명의 복제된 스미스 요원과 벌이는 네오의 격투신은 재밌는 액션이다. 그러나 전편처럼 액션의 패러다임을 충격적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다.

두배 이상 들어간 제작비는 감춰진 인간들의 도시 ‘시온’을 거대하게 구현했다. 그러나 3분의 1가량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시온장면은 지리하리만치 전형적이다. 동굴 광장을 가득 메운 다인종 인간들이 난교를 방불케 하는 관능적인 레이브파티를 벌일 때까지 ‘진짜 인간’들은 <매트릭스>의 상상력을 바이러스처럼 갉아먹는 듯하다(스미스 요원이 모피어스를 고문하면서 인간들을 바이러스에 비유하지 않았던가. 비록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2의 삶을 사는 가짜 인간들이지만 그들이 등장하는 1편의 군중신은 흥미로웠다).

그렇긴 해도 “1편과 달리 관습적인 코믹북(만화책)영화”라는 <뉴요커>의 평은 지나치다. 우리는 ‘새파랗게 젊은’ 워쇼스키 형제가 처음부터 치밀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3부작의 전모를 아직 다 보지 못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스펙터클과 철학적 사유를 동시에 낚아채려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을 것이다.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철학하는 액션블록버스터라니. 액션에 방점을 찍었던 1편에 비해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철학하기’에 무모하리만치 긴 시간을 배치한다. 액션과 단절감을 주면서까지. 1편 때, 워쇼스키 형제는 키아누 리브스에게 시나리오 대신 현대철학서 3권을 먼저 안겨주고 읽게 했다. 이번에는 프린스턴대학의 코넬 웨스트 교수를 시드니 촬영장으로 초빙해(래리 워쇼스키는 웨스트 교수가 쓴 <해방의 서>와 <인종문제들>의 열렬한 팬이다) 시온의 평의회 장면에 출현시켰다. 웨스트 교수는 그곳에서 래리와 함께 호머부터 카잔스키까지 서사의 역사를 논하고, 쇼펜하우어와 윌리엄 제임스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는 “래리는 독일 학자들보다 헤르만 헤세에 대해 더 잘 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웨스트 교수는 또 키아누 리브스와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에 대해, 로렌스 피시번과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철학하는 액션블록버스터라니. 액션에 방점을 찍었던 1편에 비해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철학하기`에 무모하리만치 긴 시간을 배치한다. 액션과 단절감을 주면서까지.

철학자 질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1편 <매트릭스>는 ‘기관없는 신체’이고, 2편 <…리로디드>는 ‘철학 기계’다. 1편에서 모순처럼 남겨진 게 있었다. 예언자 오라클이 네오에게 “너는 그(구원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음에도 영화는 네오가 구원자인 것으로 끝났다. 1편은 ‘기관없는 신체’, 즉 어디에서 머리가 생기고 손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부화하지 않은 ‘알’같은 존재였다면, 2편에서 드디어 기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말하면(변명하자면 좀더 많은 정보를 알고보는 게 2편에 대한 알맞은 감상법일 것이다), 2편에서 네오는 구원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네오는 매트릭스가 만든 불규칙성의 산물이라고 증언된다. 이미 5명의 또 다른 네오가 존재했고 같은 길을 반복해갔다. 예언자 오라클은 그 자신이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매트릭스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리고 1편에서 네오가 몸속으로 뛰어들어 해체시켰던 스미스 요원은 네오의 일부를 덮어쓰기 형식으로 복제해 “너 덕분에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도망자 ‘버그’가 돼버린 스미스 요원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 자기복제를 해댄다. 이쯤되면 <매트릭스>의 서사와 사유가 어디까지 갈지 짐작하기 힘들다.

텍스트

정체성에 변동이 생겼지만 매트릭스를 파괴하려는 네오의 ‘욕망’이나 네오를 증오하는 스미스의 ‘욕망’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번번이 격투를 벌인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건 정말 주체적인 결정인가? 정보 브로커로 등장하는 프랑스인 악동 메로빈지언은 네오 일행을 비웃는다. “선택은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심어준 환상”이라고. 그는 욕망 역시 프로그래밍된 것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레스토랑의 멋진 여자에게 프로그래밍된 케이크를 먹게 해 욕정을 일으키고, 그걸 비웃고, 기꺼이 그 욕망을 즐기러 화장실로 뒤쫓아간다. 이제 ‘욕망하는 주체’라는 긍정적 명제는 흔들려버린다.

‘기관없는 신체’는 기관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자기 몸을 기존 신체로부터, 기존 체제로부터 탈주시킬 수도 있고 몸이 뒤틀려서 죽을 수도 있다. ‘끊임없는 탈주’를 꿈꿨던 들뢰즈가 이 명제를 말한 의미다. 1편의 신체는 2편에서 예상치 못한 쪽으로 자기 기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3편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 그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그래서 어떤 탈주를 보여줄지, 그게 얼마나 성공적일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워쇼스키 형제가 ‘…스키’류의 예술영화가 아니고서도, 난해한 책이 아니고서도, 최첨단 액션으로 철학의 최첨단을 포획할 수 있다는 도전장을 내건 것만은 분명하다.

<애니매트릭스>와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인터넷 공개 1시간 만에 다운로드 25만번

<프로그램>

<매트리큘레이티드>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를 세편이나 만들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여한은 많은데, 계약은 단 세편. 그래서 워쇼스키 형제와 제작자 조엘 실버는 형제가 각본을 쓴 단편들과 함께 상상력을 더욱 확장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피터 정과 가와지리 요시아키, 와타나베 신이치로 등이 참여한 <애니매트릭스>는 그렇게 태어났다. <애니매트릭스>는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역사를 흝어가는 <두 번째 르네상스 1, 2>, 중세 일본 산사를 배경으로 한 여전사와 그 연인이 결투를 벌이는 <프로그램> 등 아홉 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최고의 애니메이션 인력이 참여한 <애니매트릭스>는 영화 <매트릭스>를 중심으로 얽히면서도 작가의 스타일과 독창성이 묻어나는 점이 돋보인다. 인터넷에 공개된 지 1시간 만에 다운로드 횟수 25만번을 기록한 <프로그램>은 가와지리 요시아키 특유의 날카로운 그림체로 능숙하게 검과 검의 싸움을 이끌어나가고, 피터 정은 인간세계로 끌려들어온 기계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철학적으로 풀어냈다. 이중에서 제작진이 스토리가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트릭스 1.5>라고 부르는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은 실사를 능가하는 현실감을 지닌 3D애니메이션. <드림캐쳐>와 함께 극장에서 개봉했다.

고집있는 형제는 프랜차이즈 상품으로만 인식되던 게임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게임큐브, PC를 위한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 완성을 위해 600쪽에 달하는 대본과 1시간 분량의 35mm 필름 영상, 역시 1시간을 차지하는 디지털 영상을 준비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아쉽게도 영화에선 조연인 니오베와 고스트. 파일럿인 니오베를 택하면 비행과 레이싱으로 매트릭스를 돌파하고, 전사 고스트를 선택하면 총과 각종 무기를 들고 전투에 뛰어들게 된다. 두 캐릭터를 연기한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앤서니 웡은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와 게임 시나리오를 구분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핀켓 스미스는 자신의 캐릭터로 게임하는 재미를 말하면서 “왼쪽 턱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감회를 전하기도 했다.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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