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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겠네, <뷰티풀 걸>
2003-05-22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서 ‘열두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말하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묘한 공감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 오만하게도 나 역시 이미 내가 다 자랐다고 생각했던 열두살이 존재했었다. 유치원 사진에서도 홀로 머리가 튀어나왔을 정도로 키가 컸고 남다르게 발육상태가 좋았던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어른스럽다고 스스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빨리 자랐다고 해서 결코 기뻐할 필요는 없었다. 십여년이 지난 뒤 키와 몸무게의 숫자는 불었을지언정 오히려 나의 정서와 사고는 여전히 사춘기 소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윽고 엄청난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뷰티풀 걸>은 이런 내게 제법 충격을 가한 영화였다. 아니, 영화 자체라기보다 어느덧 <레옹>의 마틸다에서 벗어나 사랑스런 열세살 소녀가 된 ‘마티’(내털리 포트먼)에 반했다고 해야 옳겠다. 고향을 떠나 뉴욕의 바에서 피아노를 치는 윌리(티모시 허튼)는 변호사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지닌 애인과의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고향으로 피신한다. 어리숙한 아버지와 동생이 살고 있는 답답한 고향집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할 때, 그는 이웃에 사는 마티와 마주친다. 그리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여자친구와 문제가 있어서 여기에 왔죠?”라고 말하는 당돌한 소녀에게 매혹되고 만다. 그것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가졌던 로리타 콤플렉스와는 다른, 정말이지 매우 순수한 ‘매혹’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마티라는 소녀는 윌리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것과 자신도 그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난 몇년 뒤면 훨씬 멋지게 자랄 거예요”라고 말할 만큼 스스로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자신보다 열다섯살이나 어린 소녀에게 끌리는 윌리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그런 마티에게 강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질투였다.

‘아… 저 시절의 나는 왜 내가 더 멋진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왜, 왜, 몰랐을까.’ 갑자기 막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뷰티풀 걸>에는 윌리의 고향 친구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오랫동안 사귀어온 애인이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고교 시절 사귀었지만 이미 유부녀가 된 동창을, 또 누군가는 잡지 속의 쭉쭉빵빵한 모델들을 흠모하며 여전히 자신만의 완벽한 ‘뷰티풀 걸’을 찾고 있었다. 사실 ‘뷰티풀 걸’을 찾는 것은 영화 속의 남자들뿐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현실의 여자들 역시 자신이 완벽한 여자이기를 꿈꾼다. 그것은 더 날씬한 몸매나 인형 같은 얼굴을 가진 미인일 수도 있고,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해 우아하게 늙어가는 가정주부일 수도 있고, 결혼을 해도 남편에게 종속되지 않는 당당한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다. 물론 남자들에게도 자신만이 꿈꾸는 ‘뷰티풀 보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윌리의 친구들이 그랬듯, 대부분은 뷰티풀 걸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바로 지금의 ‘나’라는 사실은 더더욱 깨닫지 못한다.

윌리가 매료되었던 것은 열세살의 마티이기보다는 5년, 10년이 지난 뒤 너무나 멋지게 성장해 있을 한 여성, 혹은 빛나는 ‘가능성’이었다. 때문에 이미 지성과 미모를 갖추어놓은 현재의 애인에게서는 그러한 설렘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숙이고 포기한다. 마티가 18살이 되면, 자신은 너무나 초라하게 늙어갈 테니까…. 그 역시 자신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새의 선물>의 주인공처럼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인지할 수 있다고 깨달을 때면, ‘이젠 내가 조금 자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서른이 된다면 정말, 날개 달고 날고 싶어.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네∼.’ 양희은 아줌마는 왜 그렇게 노래했을까. 지금의 내 자신이 뷰티풀 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년이면 이제 난 고작 ‘빛나는, 서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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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DVD 홍보사 씨네뱅크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