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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알약을 먹지 말걸 그랬나? <매트릭스>
2003-06-04

<매트릭스>(The Matrix)는 내 일상적인 삶에 혁명을 몰고온 영화다. 뚱딴지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신문기자로 정신없이 일하던 내게 또 다른 삶에 대한 고민을 불쑥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상이 가상현실에 갇혀있는 매트릭스라는 뜻은 아니지만 간혹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정형화되는 삶의 바퀴 속에서 우리는 관성의 법칙대로 대부분 살아가게 된다. 빨간 알약이냐 파란 알약이냐의 선택을 누구나 한번쯤 삶을 살면서 겪게 된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는 언론사를 미련없이 떠났다.

벤처기업에 취직도 해보고 지금은 서슬 퍼런 작두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매트릭스>에서 가상현실의 달콤한 향수를 그리워한 사이퍼처럼 때론 편안하고 안정된 과거의 삶으로 회귀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빨간 알약을 먹지 말걸 그랬나보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는 게다가 난생처음 하는 창업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사업 아이템을 놓고 고민하던 와중에 우연히 DVD로 다시 보게 된 이 영화가 곧바로 내 눈을 멀게 했기 때문. 기자 시절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 최고라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을 인터뷰했을 때도 인터넷 쇼핑몰에 대해 별다른 자극을 받지 못했는데 이 DVD를 보는 순간, DVD를 파는 인터넷상점을 차리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빨간 알약을 2번씩이나 먹은 셈이다. 이러다가 ‘약물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 <매트릭스2 리로디드>를 보았다. 1편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던 주인공 네오는 이미 자기확신에 찬 슈퍼맨이 돼 있었다. 아쉽게도 현실에서 사람은 결코 슈퍼맨이 될 순 없다. 인생의 어떤 매트릭스에 매몰돼 살다가 그곳을 겨우 빠져 나온다 해도 또 다른 매트릭스가 냉엄하게 기다리고 있으니까.

<매트릭스2>에 대한 혹평과 찬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영화평에 앞서 워쇼스키 형제의 뛰어난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를 연속 창조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확신과 다양한 변화에 직면하더라도 극복해낼 수 있는 창조력이다. 그런 점에서 상상력이 곳곳에서 넘쳐나는 <매트릭스>는 지치고 힘들 때 내게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한다.

DVD에 서플먼트로 담겨진 <매트릭스> 제작과정과 특수효과 해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받은 충격도 의외로 컸다. 영화를 보는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특수효과의 창조와 독특한 의상스타일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이른바 ‘완벽주의’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고객을 위한 완전한 서비스가 생명이라는 쇼핑몰 사업을 하는 나로서도 어떻게 하면 고객을 더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경각심과 함께 한없이 부러웠다.

우리나라 정치판이나 사건들을 보면서도 이 영화가 자주 떠오른다. 현실사회에선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대구지하철참사처럼 말도 안 되는 일과 싸움이나 일삼는 정치인들의 행각을 보다보면 내 자신이 매트릭스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도대체 빨간 알약을 얼마나 더 먹어야 하는지.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자기확신에 찬 선택은 가장 행복한 경험일 것이다. 물론 더스틴 호프먼과 지나 데이비스, 앤디 가르시아 주연의 <리틀 빅 히어로>처럼 인생의 선택은 다른 사람과 연결(네트워크)돼 있다. 다른 사람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매트릭스화된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일 것이다.

“Welcome to Real World”라는 모피어스의 인상적인 대사처럼 <매트릭스>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나의 실제 삶과 완벽하게 병렬해 존재한다. 직렬로 연결된 수많은 내 세계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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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래/ 파파DVD 대표이사 jongrae@papadv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