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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타 악당 에이전트 스미스

스미스씨, 스타덤에 오르다

디즈니가 1982년 선보였던 영화 <트론>이 컴퓨터그래픽과 실사를 합성한 최초의 할리우드영화라는 평가를 듣기는 했지만, 흥행에서 참패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영화의 설정 중 상당 부분이 <매트릭스>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주인공(제프 브리지스)이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지배하는 마스터 컨트롤(<매트릭스>의 아키텍트?)의 심복 프로그램인 사크(<매트릭스>의 에이전트 스미스?)와 대결을 펼친다는 것이 특히 그렇다. 더구나 마스터 컨트롤에 저항하는 트론(<매트릭스>의 오라클?)과 교류하는 것까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물론 혼성교배의 대명사가 된 <매트릭스>에서 그 정도 유사점이 뭐가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말은 없다. 그래도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데 있어서 결국 20여년 전의 설정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있는 것 아닐까?

여하튼 당시 <트론>을 일종의 컬트로 숭배하는 마니아들 중 상당수는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한 주인공이나 선한 프로그램 트론보다는 악당 프로그램 사크에 더 열광했었다. 일단 사크를 연기한 데이비드 워너가 <오멘> 등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던 점도 작용했고, 컴퓨터의 차가운 이미지가 투영된 사크 캐릭터 자체가 묘한 매력을 발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개봉에 즈음해 매트릭스의 세계를 대표하는 악당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이전트 스미스(휴고 위빙)도 인기를 끌고 있어 아주 흥미롭다. 물론 그렇게 주인공만큼 혹은 주인공보다 악당이 더 큰 인기를 끈 것은 두 영화만의 사례는 아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에 등장했던 다스 몰이나 <양들의 침묵> 시리즈의 한니발 렉터,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조우커 등은 악당 스타들이었던 것.

그 리스트에 에이전트 스미스가 낄 수 있었던 것은 전편에서의 활약도 활약이었지만, 시스템의 명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의지에 따라 자기복제를 해가며 네오를 찾아다닌다는 속편에서의 설정이 주효했다고 하겠다. 프로그램으로서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복수’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 그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를 ‘경배한다’는 한 팬사이트의 운영자도 그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그가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들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특히 너무나 평이해 보이는 다른 에이전트들과 비교해보면 그런 특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이 그 운영자의 주장이다. 그런 특성과 더불어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 대한 리뷰를 쓰더라도 100여명의 에이전트 스미스 복제들과 네오가 격돌하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도 인기몰이의 또 다른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에이전트 스미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진 매력뿐만 아니라 배우 휴고 위빙의 매력을 또 다른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난 1999년 1편 개봉 때만 해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배우였던 휴고 위빙이, 2001년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서 엘프족의 족장격인 엘론드로 등장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을 통해 입지를 확고히 한 것의 후폭풍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해석도 일리가 있는 것이 사실. 호주 출신으로 <프리실라>에서 드랙퀸을, <베이브> 시리즈에서 양치기 개의 목소리를 연기한 것 이 외에는 전세계 영화관객에게 별다른 인지도를 가지지 못했던 그가, 할리우드 대작영화들의 주연으로 잇따라 등장하면서 관객에게 매력적인 배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휴고 위빙의 <매트릭스> 출연 자체가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처음 워쇼스키 형제가 그에게 스크린 테스트를 제의했을 때 영국에서 소규모 영화에 출연 중이던 그는 일말에 거절했던 것. SF라는 장르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당시 촬영 중이던 영화가 무척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의 매니저가 끝까지 시나리오를 읽어보라고 권했고,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그가 워쇼스키 형제를 만나러 떠나면서 <매트릭스>와 인연이 시작되게 되었던 것. 다행히 스크린 테스트를 통해 워쇼스키 형제는 휴고 위빙의 독특한(?) 마스크가 에이전트 스미스에 적격이라고 판단했고, 휴고 위빙 역시 에이전트 스미스라는 다소 평면적일 수 있는 조연을 생동감 있는 주연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에이전트 스미스(혹은 휴고 위빙)의 인기는 다양한 방면에서 표출되는 중이다. 복제된 에이전트 스미스의 얼굴로만 가득 채워진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포스터가 나왔고, 그를 복제하는 컴퓨터 코드를 새긴 티셔츠도 인터넷에서 팔리고 있다. 게다가 그를 표지에 내세운 영화잡지가 한둘이 아니며 그의 모습을 본뜬 장난감까지 출시된 상태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인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예고편을 보면 에이전트 스미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과연 에이전트 스미스가 한니발 렉터를 넘어서는 악당 스타의 대표주자될 것인지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이런 측면에서도 기대가 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이철민

에이전트 스미스 팬사이트 : http://www.republicofnewhome.org/AandA/agent-smith.htm

휴고 위빙 팬페이지 : http://www.nuli.net

에이전트 스미스 사진 모음 페이지 : http://otherside.junik.lv/pages/matrpic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