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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잡초근성, 그리고 창의력

영화의 고향 부산에서 작고 조촐하지만, 정겹고 아름다운 행사가 6월2부터 7일까지 열렸다. 경성대 연극영화과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처음으로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영화제, 연극제, 이벤트, 세미나 등 나름대로 다양한 행사를 벌였다. 필자는 연극제의 작은 후원자 손님으로 초대를 받아 부산 나들이를 갔었다. 학생들을 위해 작은 성의를 보인 것을 가지고 무슨 생색을 낼 일이라고 굳이 갈 이유가 없었지만, 부산의 바다를 핑계로 내려갔다. 영화쟁이로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은 듯한데, 돌아오면서 뜻밖의 가슴 뿌듯한 감동을 느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는 1983년에 생겼다. 남한의 추풍령 이남에서는 최초의 연극영화과라고 한다. 당시만 해도 지방에서 연극영화과가 생기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과 관련한 일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지방에서 학교를 나와 서울에 오면 무슨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충무로 영화의 모든 분야에서 경성대 출신 영화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학교를 자랑스러워 하며 사랑하고 있었고, 모 신문에서 전국의 연극영화과를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3위를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행사 마지막 날 동문의 밤이 열렸다. 1기부터 재학생까지 모든 기수에 걸쳐 선후배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동문회장의 울먹이는 인사말에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화답하는 박수를 보냈다. 자랑스러운 선배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했고, 후배들은 선배들 앞에서 자신들의 재능과 끼를 마음껏 펼쳐 보였다. 이들 중에 경성대 출신이 아니면서 경성대인으로 초대받은 특별 손님이 있었다. 현재 중앙대 영화과 교수이며, 부산영화제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용관 교수였다. 그는 경성대 연극영화과가 생긴 이듬해인 1984년에 교수로 부임하여, 이후 10여년 동안 학생들과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선배로서 학생들과 함께 뒹굴며, 오늘의 경성대인들을 길러내는 데 밑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이날 행사의 히로인은 2기 졸업생인 배우 조재현이었다. 후배들은 연기자로서 묵묵히 한길을 걸어 오늘날에 이른 선배에게 진심으로 사랑과 존경을 전했고, 조재현은 경성대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움과 후배들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으로 맞받았다. 또한 그 외에도 감독, 프로듀서, 배우, 개그맨, 탤런트, 아나운서, 영화스탭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을 자랑스러워 하며 환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선후배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아끼고 칭찬하는 풍경은 참으로 보기 드문 감동의 순간들이었다. 오늘날 부산이 영화산업의 한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이들의 열정과 애정이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이 걸어온 자취와 앞으로 가야 할 예술쟁이의 험난한 여정을 서로 나누며 해운대의 파도소리와 함께 잦아들고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영상위원회의 활동은 한국영화 발전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여기에 경성대 연극영화과가 숨은 노력으로 중요한 토대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서간 선배들처럼 앞으로 후배들의 노력과 활동이 기대된다. 부산을 영화의 고장으로 만든 주역답게 꿈과 패기가 넘치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서울 중심의 문화예술에서 탈피하여 지방에서도 새로운 문화예술의 장이 열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아직은 작지만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극단과 영화제작사들의 성과들이 멀지 않아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서울에서 자리잡은 많은 영화인들이 부산을 새로운 활동의 근거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지역과 출신의 가름이 아니라 부산이 영화산업의 한축으로 발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촌놈 특유의 잡초 근성은 생존의 동력일 뿐만 아니라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과 창의력이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경성대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는 연극영화과에서 숨은 인재들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이것은 경성대 연극영화과 VISON 20 FESTIVAL이 나에게 가져다준 감동이며 확신이다. 이승재/ LJ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