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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스타의 성공적인 연출 데뷔,<컨페션>
■ Story

여자 꼬셔내는 것 외에 별 생각없던 척 배리스(샘 록웰)는 단지 TV가 유망하다는 말만 믿고 TV업계로 무작정 뛰어들지만 제안한 아이디어는 묵살되고 여자친구 페니(드루 배리모어)와의 연애 외에 모든 일이 무료하다. 이때 CIA 요원 짐 버드(조지 클루니)가 찾아와 암살요원이 될 것을 제안한다. 이를 계기로 킬러 일을 시작하게 된 척은 때마침 제안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어 유명세를 얻자 CIA 암살요원과 잘 나가는 TV PD라는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 Review

<컨페션>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다. 다른 흥행배우들과는 달리 사려 깊게 작품을 골라왔다는 점에서 조지 클루니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대단한 영화스타가 연출을 하게 됐다는 것은 그 결과가 주목되지는 않더라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게다가 <존 말코비치 되기>라든가 <어댑테이션> 같은 희한한 상상력을 과시한 문제적 작가가 그 영화의 각본을 쓴다면 어떨까? 게다가 스티븐 소더버그 제작을 필두로 무슨 미라맥스 올스타팀이나 되는 양 싶은 호화로운 크레딧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걸작’의 탄생보다는 시작부터 어떤 ‘괴물’이 나타날까에 대한 관심이 생길 만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기대들은 영화가 시작되면 뜻밖에도 진정한 ‘괴물’에 턱 막혀서 잘 보이지조차 않는다. 그 괴물의 이름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며 실존인물인 척 배리스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안기부의 사찰이 염려되던 그 시절 대단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프로 ‘몰래카메라’의 호스트 이경규가 어느 날 회고록을 내서는 실은 자신이 안기부 요원이었으며 ‘몰래카메라’도 실은 그 부산물이다는 식의 말을 했다면? 그것은 이미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우스꽝스러움과 더불어 우리가 그 프로그램에 열광하며 웃었던 기억들을 완전히 ‘살인의 추억’ 식으로 뒤집는 ‘깨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실제로 그랬던 인물이 바로 척 배리스다. 지금도 미국 TV의 숱한 엽기적 프로그램들의 기본 아이디어이며 원안이랄 수 있는 ‘리얼리티 쇼’의 창안자인 그가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은 자신이 33명을 살해한 전력이 있는 CIA의 암살요원이었다고 쓴 것이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있지도 않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를 버젓이 만들어내거나 실존하는 배우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카우프만의 독특한 솜씨를 요하지 않고도 이미 현실과 허구가 뒤죽박죽인 채인 척 배리스라는 이야깃거리다.

이 자서전에 기초한 <컨페션>은 순전히 웃자고 만드는 TV프로그램과 피비린내 가득한 국가적 폭력의 그림자를 겹쳐놓기에 너무 심각하거나 너무 의미심장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분위기는 경쾌하다. 실은 클루니도 카우프만도 척 배리스의 ‘고백’(confession)을 경청하는 척할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숨기지 않고 ‘땡’소리로 ‘저격’했던 척 배리스가 실은 진짜 저격수였다고 소개하는 것은 그들에게 그저 이경규가 실은 안기부 요원이라며 능청떠는 진지한 농담 같은 것이다. 이 영화의 코미디적 요소는 자기도취적인 얄팍함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척 배리스를 샘 록웰이 오히려 심각하게 열연하면서 보여주는 ‘돈키호테’류의 풍자에 있다.

영화는 인물들을 마치 정물처럼 보이게 하는 밝고 따뜻한 옐로 톤의 횡축과 어둡고 푸른 필터의 화면을 종축으로 양분되는데, 이 사이에서 포착되는 척의 이중생활은 TV가 욕망의 수단에서 대상으로 바뀌어버린 미국사회 욕망의 궤적이다. 그 궤적에 따라 여자가 궁해서 TV산업에 뛰어들고 동유럽 미녀들과 뒹굴어볼까 해서 CIA요원이 되는 이 생각없는 남자가 온 세계를 누비며 껄떡거리고 싸움질을 하는 모습은 미국 대중문화 혹은 미국 정신 자체를 조롱한다. 그러나 영화는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기꺼이 TV에 나오길 바라는 미국 대중의 어설픈 목소리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들려주며 각 시대에 대한 냉소적인 자세를 조금은 유보한 채 따스한 기억들을 촘촘히 박아넣는다.

그러나 <컨페션>은 재미있거나 의미심장하거나 흥미롭거나 하지만 불행히도 동시에 모두 다는 아니다. 너무 강한 맛을 가진 요소들을 한정된 영화의 공간에 ‘꽉 채워넣은’ 탓에 정작 아주 경쾌하지도 또 아주 진지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브래드 피트와 맷 데이먼의 깜짝 카메오 연기가 주는 유쾌함조차 ‘괴물’ 척 배리스에게 원기를 다 빨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흡인력 대단한 소재와 강한 개성의 제작진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뒤죽박죽되지 않았다는 나름의 미덕만으로도 대스타의 연출 데뷔는 성공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참고로 베를린영화제는 이 영화의 척 배리스 역을 맡은 샘 록웰에게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 척 배리스와 리얼리티 쇼

시청자 참여 방송 첫 시도

현재 미국 방송가에서 나날이 쇠락해가는 드라마와 뉴스, 정보 프로그램 시장의 틈바구니를 뚫고 가장 각광받고 또 가장 많이 지탄받는 장르가 바로 그 유명한 ‘서바이버’(survivor)를 위시한, 시청자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 ‘리얼리티 쇼’다.

미국의 각 방송사들은 뉴스에서 자신들이 키우는 역점 쇼의 우승자들을 인터뷰하고 다른 방송사의 쇼에 대해서는 선정성과 해악을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는 아이러니를 보여줄 만큼 이 장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선정성의 강도나 유형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국 ‘각본없이’, ‘시청자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척 배리스가 처음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발전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유형은 대개 1) 상품이나 경품을 두고 무한경쟁을 하거나(무한경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숱한 우발적 방송 ‘사고’들이 실은 볼거리다) 2) 남녀간의 데이트, 미팅, 맞선을 실황 중계하는 쪽이거나(사적 욕망을 지켜보려는 관음적 욕망에 부응한다) 3) 스타탄생 계열의 콘테스트(실은 TV에 나오고 싶다는 순진한 대중의 몸부림을 비웃는 과정에서 쾌감을 주는)로 요약될 수 있는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척 배리스의 ‘리얼리티 쇼’는 63년의 데이팅 게임(Dating Game)을 필두로, 상품이나 경품을 두고 배우자를 팔겠다는 신혼부부게임(Newlywed Game),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못 부르는 사람 데려다놓고 징을 쳐서 망신주는 게 목적인 땡쇼(Gong Show) 세 가지이며 앞서 세 유형 모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중 데이팅 게임은 우리나라의 ‘사랑의 스튜디오’처럼 칸막이를 남녀 사이에 쳐놓고 한 여자에게 남자들이 선택되기 위해 애쓰는 게 기본 컨셉인데 영화에 나오는 이 쇼에서는 <오션스 일레븐>에서 조지 클루니와 맺은 친분 때문에 카메오 출연한 브래드 피트와 맷 데이먼이 대사 한마디 없이 딱지 맞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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