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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의 `잔혹우화` ,<도그빌>
■ Story

미국 로키산맥의 작은 마을 ‘도그빌’. 어느 날 총소리와 함께 아리따운 여자 그레이스가 찾아온다. 갱들한테 쫓기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숨겨준다. 2주 동안의 유예기간을 두고 그레이스를 관찰한 마을 사람들은 고운 심성과 지적 능력, 무엇보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노동을 높이 사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날 경찰이 나타나 수배 전단을 붙이자 상황은 급변한다. 숨겨주는 대가로 노예 수준으로 전락한 노동을 강요하더니 급기야 내놓고 성적 학대를 가한다.

■ Review

드디어 ‘순교자’에게 심판의 권한을 부여하나. 프롤로그와 아홉개의 장으로 구성된 영화의 대부분은 라스 폰 트리에의 전작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에서 순진무구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순교를 강요했던 구조의 변주다. 그레이스는 이웃과 인간의 선의를 믿었던 ‘순진한 오류’ 때문에 처참하게 능욕당한다.

그런데 ‘미국 삼부작’의 첫 번째라서 어떤 선언이 필요했던 것일까, 순교자는 들끓는 분노감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눈물을 글썽이며 응징을 시작한다. 마지막 9장의 반전에서 순교자는 마치 악마적 권능과 연대를 작심한 듯한데, 트리에는 그 복수와 응징에 죄책감을 실어나르지 않는다. <도그빌>이 예수와 그 아버지가 주연·감독을 도맡은 듯한 현대판 우화임에도 악마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냉소적 성찰이되 겸손한 머뭇거림조차 내동댕이친 듯한 무소불위의 시점. 모든 상황을 관장하는 내레이션과 끈덕지게 현장을 주시하는 핸드헬드 카메라, 분필로 그어놓은 ‘투명한’ 연극무대라는 세 가지 방편이 그 시점을 지켜내는 형식이다.

8가구에 불과한 도그빌의 일상은 늘 한눈에 포착될 수밖에 없는데 한쪽에서 평화로운 가정 풍경이 펼쳐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태연히 강간이 자행된다. 응징의 필연성을 보여주는 가장 드라마틱한 도구는 가해자에 대한 정밀한 관찰이다. 가해자들은 특별한 사디스트들이 아니다. 수줍은 엔지니어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준 그레이스에게 무쇠로 만든 개목걸이와 쇠사슬을 뒤집어씌우면서도 여전히 수줍어하는 모습이나 그레이스를 극진히 사랑하는 톰 에디슨(개척정신의 상징 톰 소여와 발명가 에디슨의 합성어인 듯한)이 도덕 강연에 열정을 쏟는 작가지망생이자 철학도로 늘 최선의 방책을 궁리하지만 누구보다 그레이스를 절망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때, 트리에가 짜놓은 감정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로렌 바콜, 필립 베이커 홀, 벤 가자라, 제임스 칸 등 대가급 배우들은 잠깐씩 스쳐지나가는 듯한데도 이 잔혹우화에 생생히 피와 살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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