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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도 영화쟁이구나!

배우의 인생은 한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인생이 있다. 배우도 생존과 자기성취를 위한 하나의 직업에 불과할 수 있지만, 스크린에 투영되는 배우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 아닌 대중의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즐기는 대중의 감동은 배우의 인생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서 출발한다. 대중이 열광하는 배우에 대한 사랑의 시선에는 그들의 삶과 스크린의 인생을 하나로 보고 싶은 욕구와 판타지가 있다. 단순히 인기만 있는 것이라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뭐 그리 궁금할까 싶다. ‘스타’라는 딱지가 존경의 마음으로 우러러는 것이지만, 때로는 경멸과 야유로 돌변하는 사슬인 것은 스타의 인생을 자신의 우상으로 영원히 간직하고픈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배우는 우리 모두의 자산이자 자랑거리이다.

스타 배우가 한 사람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이 숨어 있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갈수록 높아만 간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있지만, 이것은 배우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들의 높은 개런티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 자신의 욕심으로만 치부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최근에 작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몫을 기꺼이 희생하거나 양보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대선배인 안성기가 이미 여러 차례 보여준 미덕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자랑스러움이다. 추상미는 박경희 감독의 <미소>가 저예산이라는 이유로 노개런티로 출연했다고 한다. 장동건이 <해안선>에 출연하면서 보여준 아름다운 선택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모든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우정출연을 하는 것은 오래된 미덕이다. 감독에 대한 우정이든 동료 배우나 제작자에 대한 우정이든 모두 아름다운 것이다.

얼마 전 김지훈 감독의 데뷔작인 <목포는 항구다>가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시작했다. 조재현과 차인표가 두 주인공이다. 우여곡절이라 함은 모든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필연적으로 겪는 운명(?)적인 과정이지만, <목포는 항구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조재현과 차인표를 어렵사리 캐스팅했다. 꿈에 부풀어 크랭크인을 향해 달려가던 중 암초에 부딪혔다. 마지막 순간에 투자계약이 무산되고 말았다. 한달 두달 시간은 흘러가지만, 대안은 쉽게 마련되지 않았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엎어지고 고생하던 스탭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에 놓이는 것이 대개의 수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피가 거꾸로 솟는 사람이 감독이다. 배우와 스탭들을 호령하다가 이제는 더이상 만나기도 민망하고, 어디 몰래 처박혀서 술로 때우기 십상이다. 이때 가장 가까이서 감독을 위로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격려와 용기를 준 사람이 조재현과 차인표였다고 한다.

조재현과 차인표의 아름다운 만남과 미덕을 굳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행동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영화쟁이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스타배우가 되면 주위에서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스타를 쟁탈하기 위한 생존경쟁과 정글의 법칙이 엄존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비록 본인이 선택했더라도 작품의 제작환경이 어려워지면, 무던히 기다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재현은 극중 권투장면을 위해 변함없이 도장을 찾아 연습에 매달렸고, 틈만 나면 감독을 만나 밥과 소주를 나누었다. 차인표는 자신이 일부분이라도 투자자를 찾아보겠다고 사람들을 만났다. 영화계 내부에서 차인표 하면 정통 신사로 통한다. 남에 대한 배려가 깍듯하고, 어떨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한번은 당신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진지하게 웃음 지을 뿐이다. 007 영화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한 차인표를 우리 모두는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번 작품의 경우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이 조심스레 제작자를 찾았다. 혹시 자기 때문에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본인은 괜찮으니 다른 배우를 캐스팅 해도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란다. 세상에!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이렇게까지 굽힐 수 있을까.

조재현과 차인표의 아름다운 미덕이 이 영화의 큰 밑거름이 되어서 좋은 영화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또한 우리는 대중의 사랑과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될 훌륭한 스타들을 계속 가지고 싶다. 배우의 멋진 인생은 우리의 꿈이며 판타지이기 때문에!이승재/ LJ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