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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1

“피아노선을 그때 처음 썼지”괴기영화 <백사부인>에서 특수촬영의 진화를 엿보다

<백사부인> 1960년, 제작 이형표, 제작사 신필림, 각본 임희재, 감독 신상옥, 기획자 황남, 촬영 최경옥, 정해준, 조명 이계창, 음악 정윤주, 미술감독 강성범, 출연 최은희, 신성일, 한은진, 최삼, 고성진, 옥경희

<백사부인>은 신상옥 감독이 제작자로서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에 시도한 괴기영화다. 중국 고전 <백사전>에서 따온 영화의 줄거리는 천년 묵은 백사가 미모의 여인으로 화해 사람과 사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가 ‘크랑크업’되었을 때 언론에서는 “신상옥 푸로의 최고 기술 역량을 경주한 작품”으로 묘사하며 특수촬영을 시도한 감독의 야심에 주목했다. 작업 노트의 삽화처럼 당시의 촬영구도를 스케치해준 감독의 그림을 상상하며 <백사부인>의 특수촬영 얘기를 들어보자.

<백사부인>은 중국 얘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영화 타이틀에도 나오지? 홍콩에서도 일본하고 합작해서 <백사부인>이라는 걸 맨들었는데 화려하기만 했지 우리 것만 못했다. 우리는 그때 홍콩하고 전혀 합작도 안 하고 우리끼리만 할 땐데, 그런 것치고는 미술도 괜찮았다. 대략 한국 사람들 중국 얘기 하면 이상하게 머리에다 뭘 칠하고 액세서리 두르고 나오는데, 이건 중국 고증을 따서 중국 옷에 가깝게 했다. 특촬(특수촬영) 같은 게 요즘하고 달라서 좀 유치하긴 해도, 그건 그것대로… 옵티칼도 할 수 없고, 컴퓨터그래픽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거든?

관음보살이 하늘에서 얘기하는 것은 미라(mirror)에다 구멍을 뚫어가지고 구멍 안 뚫린 데는 밖의 하늘 빛이고, 구멍 뚫린 데는 관음보살이 나오게 하고 그렇게 해서 찍었고, 하늘에서 구름 흘러내려오는 것 같은 것은 수조에 물을 채놓고, 카메라는 이쪽에서 찍고, 사람은 뒤쪽에서 움직이고, 수조에 먹물 부으면 흘러내려 구름처럼 보이게, 그런 식으로 거의 원시적이지마는 비슷하게 갔다.

지금은 얘길 해도 자네들 잘 모르는데 예를 들어서(촬영 광경이 눈에 들어오도록 그림을 그려주었다) 이만한 높은 데다가 여자를 세워놓는다. 그럼 이쪽에서 카메라가 찍을 때, 카메라 옆에다가 미라를 대고 구멍을 이렇게 뚫거든? 구멍을 통해서 이 여자는 나오지마는 구멍 안 뚫린 데는 전부 하늘로 비치잖아. 그러니까 공중에 사람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관음보살 나오는 것도 그런 거라. ‘미라 웍’(mirror work)이지 일종의. 이건 우리가 처음 한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영화에도 그런 건 없었다. 피아노선 친 것도 아마 무대하고 영화를 막론하고 이때가 처음이다. 나도 피아노선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으니까. 까만 칠을 해가지고 될 수 있으면 보이지 않게 하고 사람을 들어올리니까 허리에다가 밴드니 뭐니 ‘코르세트’ 같은 걸 입고 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지금 보면 그것도 신기하고, 편해져서 이제는 그런 생각은 못하겠지. 그러나 그때는 궁하니까. 앞서 얘기한 <무영탑>도 내가 좋아는 했지만 그거 찍을 만한 역량이 한국에 없었다. 되는 게 아냐, 그 시대에. 세트도 없이 불국사 가서 카메라 돌린다고 그냥 시커먼 탑인데 제대로 나올 리가 없지. 신라시대 건물을 재현할 만한 힘도 없고, 암중모색이었지. 그래서 결국 1막1장하는 식으로, 무대식으로 찍은 것인데, 내가 조형미술가 출신이니까 좋아서 강행은 했지만 그거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기획이었다고. 현진건이 작품 보면(<무영탑>은 현진건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 나라 사랑하는 게 구구절절이 있고, 예술가의 고민이 백그라운드에 있고 그런 테마가 좋다. 어렸을 때 동아일보에 연재된 걸 읽었으니까 거기에 대한 향수도 있갔지. 지금 그걸 한번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흥행은 힘들 것 같다. 왜 그런고 하니 얘기가 아사녀 얘기하고 구슬아기 얘기하고 두 가지로 흐르다가 합쳐지니까. 작품은 괜찮은 작품이지만 흥행은 힘들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흥행에서 절대적인 건 스토리다. 물론 디테일이 좋아야 되겠지만 근본은 스토리다. 내가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몇번 볼려고 노력했다.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로서는 한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한국 대중의 정서도 알 겸 해서 내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이니까. 근데 못 봤어. 무슨 놈의 카메라가 뉴스도 아니고 한 10분 보다가 기권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욕먹을 일이지만 배우만 있지 카메라가 엉망이다. 그런 걸 보면 흥행은 스토리가 좌우하는 것이지 잘 찍고, 잘 나오고 그런 문제가 좌우하는 게 아니다. 대담 신상옥·김소희·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marie3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