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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대가,<컨페션>의 주인공 척 배리스

<오스틴 파워>에 등장해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알려진 <제리 스프링거쇼>는 그야말로 ‘역겨움의 극치’다. 자신의 아버지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이라고 생각하는 아들 스콧과 그 아버지인 닥터 이블이 등장하는 영화 속의 내용은 오히려 애교라고 볼 수 있을 정도. 동생의 애인과 섹스를 한 언니가 등장해 동생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정도는 기본이고, 10대 딸의 남자친구와 잔 엄마가 딸에게 ‘너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거나, 신혼의 남편에게 실은 자기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신부 등이 매번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마다 그렇게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상적인 사람들은 한 가지 의구심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공격을 당하는 입장의 출연자의 경우 <제리 스프링거쇼>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뻔히 엽기적인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으면서도, 모두가 마치 전혀 몰랐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해답은 스티븐 스탁이 쓴 <오늘의 우리를 만든 것은 60년대 TV쇼들이다>(The 60 Television Shows That Made Us Who We Are Today)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바로 ‘TV에만 나올 수 있다면 사람들은 무엇이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지켜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록 <제리 스프링거쇼>라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이라면 TV에 출연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컨페션>의 주인공인 척 배리스는 오늘날 TV에 매몰되어 살아가면서, 언젠가 TV에 출연할 것을 꿈꾸는 우리를 만들어낸 창조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 그려진 것처럼 그가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반인 대상의 게임쇼의 원형을 처음 브라운관에 선보이고 또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그 때문에 ‘저속함의 왕’, ‘악취미 남작’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를 빼 놓고는 오늘날의 <제리 스프링거쇼> <서바이버> <오프라 윈프리 쇼> 등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영화의 개봉과 함께 출시된 척 배리스의 음반 <컨페션 오브 데인저러스 싱어>

촬영현장에 나온 척 배리스(오른쪽)

척 배리스 팬사이트

재미있는 것은 그가 그 유명한 <데이팅 쇼> <신혼부부 쇼> <땡쇼>(Gong Show) 등을 만들어 성공한 대목을 제외하고는, 영화 <컨페션>이 보여주는 척 배리스의 삶은 실제와 상당부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일단 척 배리스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설정 자체에서부터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일찌감치 CBS방송 창업자의 딸인 린 레비와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것이 그와 TV산업간의 끈을 이어준 단초가 되었기 때문. 심지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델라가 훗날 <전국노래자랑>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땡쇼>에 보조진행자로 출연하기도 했고, 척 배리스가 제작한 <땡쇼>의 영화판에 출연하기도 했을 정도다. 물론 레비와의 관계는 영원하지 않았고 척 배리스는 그뒤로 두번이나 더 결혼을 했다. 그러니 영화 속의 패니(드루 배리모어)와 같은 멋진 여성과의 관계 같은 것은, 그가 잠시 바람을 피웠을 가능성을 제외하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없었던 것이다.

한편 그가 TV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동시에 CIA요원으로 암약했다는 설정은 100% 허구다. 자전적 소설이자 1984년 자신이 직접 쓴 첫 번째 책인 <컨페션>(Confession of a Dangerous Mind)에서 그는 자신을 CIA 요원으로 암약해온 인물로 그럴듯하게 묘사했었지만, 그렇게 믿은 독자는 없었다. 그가 진짜 CIA요원이었다면 자신의 활약상(?)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TV프로듀서로 일하던 중간에 공개석상에서 10년간 완전히 사라진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CIA요원으로 활동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숨어지내며 재충전을 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 때문이었는지 1993년 출간된 또 다른 자전적 소설 <게임쇼의 왕: 컨페션>(The Game Show King: A Confession)에서는 CIA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CIA가 등장하기 때문에 내용면에서는 훨씬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는지, <컨페션>을 영화화하겠다는 시도는 80년대 후반부터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다른 할리우드 프로젝트가 그렇듯이 매번 엎어지고 또 엎어졌다. 이미 1980년 <땡쇼>의 영화판을 쉽게 감독·제작했던 경험이 있는 척 배리스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화하겠다고 달려드는 이들이 마이크 마이어스를 비롯한 스타급 감독과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조지 클루니가 직접 감독을 하면서 영화화를 끝냈고, 그 결과물에 대해 척 배리스도 대단히 만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엔터테인먼트 투나이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내 CIA 판타지에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가 등장한 것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며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사진으로 봤을 때는 건강한 얼굴 위에 ‘대가’의 풍모를 가지고 있는 그가, 실은 얼마 전부터 암으로 투병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회복단계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암투병 환자의 얼굴이라고는 알아채기 힘들었던 것. 그런 그가 ‘아직도 조명 아래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일종의 경외감을 자아내게 만들기 충분했다. 비록 일부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삶이기는 했지만, 그 삶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왔기 때문이다.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척 배리스 팬사이트: http://chuckbarris.thegongshow1976.com

<컨페션> 공식 홈페이지: http://vgn.ifilm.com/confes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