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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씨가 콩알만하다구요?

한국영화 홍보를 하다보면 자연 여러 배우들을 상대하게 된다. 그중에는 연기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은 배우가 있다. 홍보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성 좋은 배우의 기준은 자기가 출연한 영화의 홍보를 열심히 해주는 배우다. 내가 생각하기에 박중훈이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박중훈이라는 배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1989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작품으로 박중훈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명세 감독의 두 번째 연출 작품이었던 <나의 사랑,나의 신부>는 작품적으로도 그렇지만 박중훈, 최진실이라는 배우가 출연해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다. 물론, 박중훈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우였고 최진실은 막 인기가 치솟은 상태여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의도에서 홍보 초점을 최진실에게 두었었다.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포스터, 신문광고 등 모든 작업을 최진실 위주로 진행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 상대역인 박중훈이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박중훈이 갑자기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채 이사님, 나는 콩알만해요.”

신문광고에 최진실 얼굴은 크게 실리고 정작 남자주인공인 본인은 얼굴이 조그맣게 나온 걸 본 모양이다. 박중훈은 그때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어서,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자신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섭섭하다는 것이었다. 근거있는 불평이었지만 원래의 홍보방향도 그렇거니와 방향수정을 하기에도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무척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박중훈이 나를 만나기만 하면 어느 자리에서건 “콩알만해요. 콩알만해요”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박중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언제 기회가 되면 이 한을 풀어줘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러다가 <세이 예스>로 다시 박중훈과 만나게 되었다. 박중훈의 연기변신이라는 초점에서 마케팅 방향은 박중훈을 전면에 내세웠고 포스터에는 박중훈의 얼굴이 한마디로 ‘대문짝’만하게 쓰여서 만들어졌다. 굳이 그런 건 아니지만 ‘콩알’이란 말에 내심 신경이 쓰이기도 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세이 예스>는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자신의 얼굴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으니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영화가 잘되지 않은 게 어디 포스터 때문이겠냐마는 그래도 난 이래저래 박중훈에게 연달아 상처를 준 셈이 되었다.

마치 내가 미안한 마음에 사탕발림이라도 하는 듯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내가 생각하는 박중훈은 천상 배우이다. 재능도 있고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줄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 박중훈을 90년대 한국영화의 ‘코미디’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으로만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박중훈은 코미디뿐만 아니라 <깜보> <그들도 우리처럼> <우묵배미의 사랑> <게임의 법칙>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이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세이 예스>에서도 박중훈은 놀라운 연기 변신을 보여줬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서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한국 영화계에 박중훈이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요즘 박중훈은 퓨전역사코미디 <황산벌>이라는 영화에서 ‘계백장군’ 역을 맡아 열심히 촬영 중에 있다. 스크린에서 박중훈 같은 좋은 배우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올 가을 우리를 기쁘게 할 박중훈표 코미디를 기대해본다.

“중훈씨, 내가 하는 말 다 진심이에요. 미안하다고 이러는 거 아닌 거 알죠? 그리고 이제 콩알만하다는 얘긴 그만하시죠.”채윤희/ 올 댓 시네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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