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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레송 특별전] 금욕의 모더니스트를 만나자

첫 장편 <죄지은 천사들>부터 83년작 <돈>까지

로베르 브레송 특별전이 하필 한여름에 열린다. ‘위대한 시네아스트’라는 부담감을 안고 보더라도, 희한하게 그의 영화는 피서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이건 흔히 ‘초월적’ 또는 ‘금욕적’ 등의 수식어로 묘사되는 브레송 영화에 대한 모욕이 아니다. 물론 브레송 영화는 호러 장르와 어떤 상관관계도 없다. 관습적인 내러티브와는 담을 쌓은 듯 보이는데도 더위를 싹 잊게 할 만큼 시선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흡인력, 인물의 심리가 아니라 행동의 표면만을 툭툭 늘어놓는 듯한데도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에 관한 섬뜩한 진실을 순식간에 깨닫게 해주는 오싹함 때문이다.

브레송 영화는 난해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분해해서 그의 영화는 이러이러하다고 늘어놓는 건 어쩐지 무모해 보인다. 브레송이 세상을 뜬 1999년, <필름 코멘트>가 36쪽을 할애해서 꾸민 브레송 특집에서 총론을 쓴 켄트 존스는 “카메라, 사운드, 테마, 내러티브, 액션, 색채, 연기 등 모든 영화요소의 정교한 협력, 그리하여 완벽한 리듬감과 명확성을 가지고 기능하는 것, 그것이 브레송 영화다”라고 했다. 그는 브레송 영화에 등장하는 대상, 액션, 감정 사이의 공간에 주목했다. 그 ‘사이의 공간’에서 보여지는 것과 느껴지는 것, 그리고 이해되는 것과 정의할 수 없으나 분명히 현존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 흘러나온다고 봤다. 그로 인해 브레송 영화는 굉장한 지적 쾌감을 안겨준다. 관능적인 형이상학과 차가운 리얼리즘의 묘미를 동시에 세례받는 듯한. 이런 관람 태도는 또 어떨까. <무셰트>에서 성장영화 <정복자 펠레>의,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동물영화 <꼬마돼지 베이브>의, <사형수 탈주하다>에서 수용소영화 <대탈주>의 장르적 쾌감을 색다르게 느껴보는 것. 브레송 영화는 이런 엉뚱하기 그지없는 기대감조차 만족시켜줄지 모른다.

브레송의 마지막 그림자를 보는 것 역시 오싹하다. 50년대의 <사형수 탈주하다>와 <소매치기>에서 희망과 구원을 보였던 그가 70년대 말의 <아마도 악마…>와 80년대 초의 <돈>에서 지독한 염세주의를 드러내며 절망한다. <돈> 이후 은둔자가 돼버린 그의 서늘한 기운이 독한 여운으로 다가올 것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일관한, 무표정하게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을 통해서 말이다(8월16∼31일 시네마테크 부산(월 휴관), 문의 051-742-5377, 5477, www.piff.org/cinema).이성욱 lewook@hani.co.kr

죄지은 천사들 1943 | 96분 | 35mm | 흑백

극작가 장 지로두가 대사를 쓴 브레송의 첫 장편영화. 양식화한 정교한 대사가 특징적이다. 영화평론가 조르주 사둘은 “브레송이 창조한 폐쇄공간은 흑과 백으로 이뤄진 하나의 교향곡”이라고 평했다. 도미니크 수녀회의 수녀 안느 마리는 전과자 테레즈를 만난 뒤 구원하기 위해 애쓴다. 테레즈는 연인이 저지른 죄로 감금돼 있다 풀려나서는 남자친구를 살해한다.

볼로뉴 숲의 여인들 1945 | 90분 | 35mm | 흑백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를 기초로 만든 작품으로 앙드레 바쟁은 브레송과 장 콕토의 각색을 높이 평가했다. 연극적 전통은 이후 작품에서도 여전하지만 양식적이고 우아한 대사는 여기서 그친다. 또 마리아 카사레스 등 직업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지만 브레송은 이후 작품부터는 훈련되지 않은 비직업 배우를 기용해 작업한다. 엘레느는 연인 장이 자신을 멀리하자 그에게 복수할 맘으로 매춘 경력이 있는 아름다운 여인 아네스를 소개해준다. 장과 아네스는 사랑에 빠지고 결혼으로 행복에 젖어 있을 즈음 엘레느가 장을 찾아가 아네스의 과거를 폭로한다.

사형수 탈주하다 - 바람은 불고 싶은 곳으로 분다 1956 | 95분 | 35mm | 흑백처형되기 직전 리옹의 한 감옥에서 탈출한 앙드레 데비니의 실화에 기초해 만들었다. 2차대전 중 10개월 동안 독일군 포로였던 브레송 자신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작품이기도 하며, 이후 되풀이되곤 하는 ‘감옥’ 혹은 ‘감금’의 이미지가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데이비드 보드웰이 교과서적이라고 평가한 사운드의 활용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레지스탕스 퐁텐느가 수용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탈출을 시도하나 실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옥에 갇힌 퐁텐느가 아주 치밀하고 집요하게 탈출 준비를 시작하는데 그 과정 역시 대단한 스릴을 맛보게 한다. 칸영화제 감독상.

소매치기 1959 | 75분 | 35mm | 흑백폴 슈레이더는 이 작품을 보고 자기 영혼이 처음으로 처녀성을 빼앗긴 것 같았다고 했다. 또 영화평론가 르네 프레달은 이 작품이 레네의 <히로시마 내사랑>, 안토니오니의 <정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와 더불어 현대영화를 잉태한 4편의 영화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모두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모티브를 지독하리만치 ‘모던’하게, 또 소매치기의 범죄 현장을 긴박감 넘치는 속도로 이끌어간다. 미셸은 사회가 부조리하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가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 소매치기다. 한 차례 경찰에 체포돼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그는 자신의 범죄에 사회적 성찰을 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가로부터 전수받은 범죄 기술의 묘미에 빠져든다.

잔다르크의 재판 1962 | 65분 | 35mm | 흑백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과 달리 브레송은 실제 재판 기록에 근거해 제한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미니멀리즘적 스타일을 탁월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삶을 바꿀 만한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는 법정과 감옥을 오가며 심문자의 질문과 잔다르크의 답변을 번갈아 보여준다. 은총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잔다르크의 재판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당나귀 발타자르 1966 | 95분 | 35mm | 흑백브레송은 배우의 얼굴에서 섣불리 심리를 드러내는 표정을 걷어낸다. 표정없는 얼굴로 움직이는 배우는 브레송의 손발이 되어 정교한 표현기계가 된다. 그런데 애초에 표정이 없는 동물마저 그의 손에서는 인간과 다름없는 배우 기능을 수행한다. 고다르가 “가장 완벽한 브레송 영화”라고 극찬한 건 이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끼 당나귀 발타자르가 인간이라는 끔찍한 굴레에 갇혀 숨을 거두기까지 일련의 시간과 사건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당나귀 발타자르의 시점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부조리함은 가공스럽다.

무셰트 1967 | 78분 | 35mm | 흑백대체로 5년 이상의 간극을 두고 작품을 만들었던 브레송이 2년 연속 작품을 발표한 건 <당나귀 발타자르>와 <무셰트>의 경우가 유일하다. 그래서 두편은 일종의 자매편으로 여겨지는데, 도리없이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생명의 처지가 냉혹하게 펼쳐진다. 14살 소녀 무셰트의 주위는 참혹하다. 병으로 꼼짝할 수 없는 어머니,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오빠, 갓난아기 남동생을 돌봐야할 처지에다 학교에선 따돌림만 받는다. 어느 날 무셰트는 숲속에서 비를 만나 오도가도 못하고, 밤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던 밀렵꾼에게 처녀를 잃는다.

호수의 랑슬로 1974 | 85분 | 35mm | 컬러전후 작품의 정서적 흐름에서 다소 돌출적으로 보이는 이 영화는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애초 기획했던 시기보다 무려 22년이 지나서야 완성됐다. 성배를 찾으러 떠났던 아서왕의 기사들이 빈손으로 돌아온 시점에서 시작해 한 시대의 몰락과 종언을 독창적인 스타일로 그려낸다. 스펙터클한 대목을 과감히 생략시켜가면서도, 스펙터클의 강렬함을 분출시키는 마술 같은 장면들이 배치돼 있다.

아마도 악마... 1977 | 96분 | 35mm | 컬러<호수의 랑슬로> 이후의 영화에서는, 높은 지성이나 성실은 젊은이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깊은 절망으로 추락시킨다. 세상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 휩싸인 청년들이 일관되게 등장한다. 청년 찰스는 꽤 열성적으로 살았던 지적인 학생이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파괴를 선언하는 급진적인 정치활동에도, 구원을 부르짖는 종교에도, 아늑함을 안겨줄 법한 사랑에도 모두 염증을 느낀다. 도움을 청했던 정신분석은 기계적 해석을 되풀이할 뿐이다. 급기야 그는 친구에게 자신에 대한 살인을 청부한다.

돈 1983 | 85분 | 35mm | 컬러더이상 은총이나 구원은 없다. 교환가치의 기능을 수행하는 ‘돈’의 행적을 따라가보니 현대의 잔인함만 있을 뿐이다.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에 비견될 만큼 격한 어조로 폭력적 사회, 폭력적 인간을 고요하게 보여준다. 장난처럼 만들어졌을 위조지폐의 피해자가 된 청년 이본은 범죄자로 몰린다. 결백을 재판에서 입증하려 하지만 위증으로 패소하고 감금당한다. 딸은 죽고 아내는 떠난다. 그는 이제 살인기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