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씨네클래식
쑥밭의 상처 속, 지금은 없는 그 사람들의 추억
2001-01-05

<잃어버린 청춘>을 만들고 결혼하다.

1956년의 명동거리는 옛모습을 되찾으려는 듯 쑥밭의 상처를 거의 메우고 있었다. 초라한 막걸릿집들을 대신해 근사한 건물에 외래어 간판을 단 카페가, 살롱이, 바가 불빛을 밝히면서 양주와 맥주로 입맛을 바꾸어놓았다.

그때의 영화계는 영화에 대한 면세조치의 혜택으로 제작편수가 증폭되면서 영화인의 생계는 넉넉해 씀씀이가 헤픈 편이었다. 카페나 바 등 어느 곳이나 영화인들이 득실거리는 풍경을 볼 때, 예전과는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고난스러웠던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한층 살아나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교차로>가 극장에 걸려 있을 때 어느 카페에 모인 평론가들이 나를 불러 가보았더니 유두연, 이진섭, 유한철, 이봉래, 허백년, 황영빈 등 여러분이 “유 감독의 <교차로>를 보고 주제는 고사하고, 연출기량면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그 다양성의 표현으로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었다”고 나를 환대하며 일제히 축배를 들었다. 이 글은 자만하려는 뜻이 아니라 그 시대상황을 알리려는 의도임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유두연은 지금의 평론가 겸 교수인 유지나의 부친으로서, 호탕하고 정열적인 성격에다가 영화비평활동이 넓었고 시나리오 창작에도 관심을 가져 나를 위해 <잃어버린 청춘>을 써주었다.

이 영화는 1957년 초 부산의 제일극장에서 첫 개봉을 했는데 명절 때라는 호기도 있었지만 경찰기마대가 동원될 정도로 인산인해의 대성황을 이뤘다. 제작과 주연은 최무룡이었는데 의욕적인 최무룡은 제작과정에서 감독의 욕구를 인색함 없이 다 들어주는 도량이 넓은 쾌남아여서 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장본인이었다.

<잃어버린 청춘>은 현대라는 큰 롤러에 밀려 방황하는 청년이 끝내 절망하는 비련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동안 <교차로>와 <유전의 애수>의 멜로풍의 경향을 탈출해서 문제의식이 있는 주제를 찾던 중 이 작품을 통해 전후의 리얼리즘을 성취하려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부산일보 영화상, 그 외 영화잡지상 등으로 나에게 처음 푸짐한 상복을 안겨줬다.

이즈음, 일년 남짓 사귀어 오던 서양화가 박근자는 자신의 부모를 중앙극장에서 상영중인 <잃어버린 청춘>을 보게 한 뒤 극장 앞 중국집에서 나를 소개했다. 장인될 분은 웃음소리가 소박하다며 내 인상에 호감이 간다고 만족해 했다. 약혼식은 박근자의 개인전으로 대신하고, 그해 겨울 남산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나의 나이 34살이었고 신부는 27살이었다. 그동안 노총각이 될 때까지 몇몇 청혼 여성들이 있었지만 나는 나의 길이 성취될 때까지 일사불란하게 달려온 셈이었다.

지금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난 그 당시 평론가들의 면모를 몇 토막으로 추억해 보고자 한다. 유두연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인데 그의 부친은 남의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규모의 토지를 소유한 대단한 지주로서 아들을 넉넉하게 키웠다. 유두연은 일본유학 시절, 비행기로 왕복할 만큼 호화로운 대학생활을 했다. 부친은 6·25전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다만 토지문서만 리어카 가득히 싣고 월남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서울 생활은 가난했지만 유두연은 다혈질적인 방탕끼와 낙관성으로 당시 평론가들을 즐겁게 리드하던 왕초격이었다. 두뇌는 명석하고, 판단력은 정확해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풀어나가곤 했던 장점이 있었다. 자유당 말기현상이 두드러지던 시절, 불만투성이 지식인들은 매일처럼 모여 폭주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더욱 심했던 유두연은 심야에 집 근처 개울의 다리를 건너다 실족해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는 훗날 서라벌예술전문학교에서 다혈질적 강의를 하다가 쓰러져 병원에서 요절하고 말았다. 수재를 잃은 영화인들은 몹시 애석해 했다.

이진섭은 이조 왕가의 후손으로서 다정다감했고 팔방미인처럼 다재다능했다. 영화평론 음악평론으로 저명했고, 그가 맡은 라디오방송의 프랑스 샹송해설은 인기프로였다. 시인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을 이진섭은 3일 만에 샹송으로 작곡했다. 인기여배우 나애심이 불러 오랜동안 크게 유행했다.

눅에게나 다정했고 남을 미워할 줄 모르던 그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낭만을 즐기던 그도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알콜중독자가 되어 아쉽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유현목/ 영화감독·1925년생·<오발탄> <막차로 온 손님들> 등 연출